김도윤의 윤서울
- gmthp1
- 2022년 7월 1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2년 7월 28일
YUN SEOUL

한식에 결이 존재한다면 김도윤의 요리는 여타 한식과 다른 결이다. 보이는 것에 힘을 빼고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셰프의 경험이라는 조미료만 더했을 뿐이다.
윤서울에 오기까지
처음부터 전문 셰프가 되겠다는 거창한 생각은 없었다.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해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국내외에서 장르에 상관없이 요리를 배우는 데 집중하며 식견을 넓혔다. 그래서일까, 김도윤 셰프에게서는 어딘가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운 유연함이 엿보였다. “원래 한식을 한 건 아니었어요. 일식이랑 프렌치는 레시피가 체계적인 데 반해 한식은 주먹구구식이잖아요. 간장 한 숟가락, 소금 약간 등 정확한 수치가 아니라 철저히 감으로 요리하죠. 손맛도 좋지만, 한식도 많이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내린 결론은 역시 한식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한식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리 음식에 관련된 옛 문헌과 고서를 찾아 읽었고 내로라하는 한식 선생님도 찾아다녔다. 식재료가 나는 곳을 직접 다니며 보고 배운 경험이 무의식에 축적되며 자신만의 한식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1, 2 면 반죽에 필요한 국내산 백태와 녹두를 165℃ 오븐에서 10분 정도 로스팅한 후 차갑게 식힌 다음 제분기에 넣어 곱게 제분해 사용한다.
3, 4 윤서울에서는 사천 백강밀을 사용한다. 통밀은 밀폐 용기에 담아 2℃ 냉장고에 보관하며 신선도를 유지한다. 산화되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국수를 만들 때마다 제분해서 사용한다.
“미쉐린 발표가 있던 시점에 면을 공부하기 위해 8개월 정도 쉬었어요.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모나코 등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우리나라로 들여오는 밀의 유통 과정을 살펴봤죠. 밭에 가서 어떻게 수확하고 관리하는지, 단백질 함량에 따라 밀을 구분하는 방식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어요. 정말 우리나라랑은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죠.” 채 10석이 되지 않는 홍대 골목길 안 작은 레스토랑 윤서울. 제면기와 채유기의 작동음, 맛있는 냄새를 내뿜으며 숙성되는 생선들이 격조 높은 여타 미쉐린 레스토랑과는 다른 분위기지만 분명한 에너지가 그곳을 채우고 있었다. 보여주는 데 힘을 뺀 것은 자아가 단단하지 않고서는 좀처럼 쉽지 않은 일. 윤서울은 올해 첫 미쉐린 별을 받았다. 셰프가 그토록 바랐던, 불필요한 장식을 걷어낸 화장기 없는 정직한 한식 본연의 모습으로.

첨가제를 넣지 않고 순수한 원물 자체를 셰프가 원하는 비율로 블렌딩하고 갓 제분해 반죽한다. 최근 셰프는 통밀, 녹두, 백태를 넣어 비건 면을 만들었다.

셰프가 전문 업체에 요청해 만든 제면기에 통밀과 녹두, 백태 가루를 넣어 서서히 혼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갯벌에서 햇볕에 바짝 말린 갯벌 흙을 바닷물로 우려 10시간 끓여서 만든 자염을 정수물에 넣어 반죽한다. 소금이 물에 녹으면 걸죽해져 반죽에 영향을 주고, 좋은 감칠맛을 내준다.
셰프의 자가 제면
윤서울은 기술 집약적인 메뉴를 추구한다. 노동 집약적인 생산은 힘이 들지만, 기술 집약적인 생산은 제품마다 기술을 녹여낼 수 있다. 이는 아르티장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김도윤 셰프는 맛은 당연히 좋아야 하고, 그 이상으로 자신이 만든 음식이 어떠한 가치가 있을지 생각한다. “15년 전 컨설팅을 의뢰받으면서 시작됐어요. 대만, 일본, 중국, 프랑스, 체코 등지를 다니면서 면을 공부했죠. 국내에선 유전자 조작 없는 통밀을 구하러 다녔고요. 농협에서 백강밀, 금강밀과 앉은뱅이밀 같은 수많은 종류의 토종 밀을 구해서 직접 제분하고 반죽해보면서 면을 개발했죠. 다양한 밀과 재료를 블렌딩하는 과정을 수없이 거치면서 원하는 반죽 레시피를 완성했어요. 제면기도 거친 면을 뽑을 수 있도록 별도로 요청해서 만든 거예요.

셰프의 반죽은 밀가루 덧칠을 하지 않는다. 면 상태가 달라지지 않고 퀄리티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늘이는 과정과 복합 과정을 수차례 거쳐 면의 완성도를 높인다.

제면기를 통해서 모습을 드러내는 난면. 1인분 양만큼 적당한 길이로 잘려 나오면 셰프는 면을 가지런히 접는다. 셰프가 건넨 갓 뽑은 국수의 맛은 갓 도정한 밥맛만큼이나 구수하고 풍미가 인상적이었다.
이 제면기로 원하는 면의 텍스처가 나올 때까지 면을 늘이는 과정, 복합 과정도 수차례 반복하죠. 원재료만으로 면의 질감이나 맛, 향, 목 넘김을 어떻게 표현할지 늘 생각해요.” 익숙한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고닦은 기술을 오롯이 음식에 녹여냈다. 면 요리는 윤서울에서 가장 많은 찬사를 받은 메뉴다. 한국에서 통밀을 제분해 면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에도 수고로움을 기꺼이 아끼지 않는 건 셰프의 노력과 음식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 셰프의 면에는 거창한 소스나 양념이 필요 없다. 바로 뽑아 싱싱한 면에 갓 짜낸 들기름과 아주 약간의 소금이 전부다.

통밀 본연의 맛과 들깨의 향이 나는 것은 물론 씹을수록 구수한 맛은 그동안 먹어온 면과는 확연히 차이를 보인다. 그러한 가치를 아는 손님들은 꾸준히 윤서울을 찾는다. “두 달 동안 열다섯 번이나 오신 손님이 계셨어요. 외국인을 포함해 각기 다른 손님을 모시고 왔죠. 나중에 알고 보니 주로 해외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김민정 한국화가였어요.

Minjung Kim Nautilus, 2020, Mixed media on mulberry Hanji paper, 207 x 146.5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현대 갤러리에서 독점 전시회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서 우리 면이랑 똑같은 작품을 만난 거예요. 저 멀리서 보고 ‘어? 왜 우리 면이 여기 걸려 있지?’ 생각했죠. 작품을 보는 내내 우리 면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비단 제면뿐만이 아니다. 우리 음식의 묘미를 ‘정성의 맛’이라고 생각하는 김도윤 셰프는 윤서울 주방에서 생선 드라이에이징도 선보인다. 주로 소고기 같은 육류에 사용하는 드라이에이징 숙성을 생선에 적용한 것이다.

윤서울에서는 물곰치, 도다리, 학꽁치, 농어, 가자미 등 다양한 드라이에이징 생선을 만날 수 있다. 잘 숙성시킨 생선은 일반 생선에서 맛보기 어려운 특별한 감칠맛과 식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부드러운 흰 살 생선은 드라이에이징 숙성을 거치면 살이 쫀득해져 찜이나 스테이크로 즐기기 좋다. 생선 뼈는 4~5개월 더 말려 모든 요리의 육수 재료로 사용한다.
“생선을 잘 말리면 각종 성분이 응축되어 맛의 깊이가 일반 생선을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생선 살이 내는 단맛과 고소한 맛, 감칠맛, 좋은 향취는 물론이고 쫀득한 식감까지 더해져 음식의 전체적인 풍미가 풍성해지죠. 물치, 학꽁치, 청어 등 안 말려본 생선이 없는데, 요즘엔 전갱이와 가리비가 맛이 좋더라고요.” 생선마다 각기 다른 시간 속에서 맛의 깊이를 찾아내는 여정은 셰프에게 또 다른 즐거움 중 하나다. 시장에서 손쉽게 구해 오는 것과 다르게 반드시 수고로운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흘러나오는 귀한 맛이 이 모든 기다림을 기꺼이 감내하게 하는 매력임을 분명 그는 알고 있다.

잘 말려 투명해진 가리비와 전갱이. 드라이에이징 숙성을 거치면 각 재료의 표면이 서서히 응고되면서 감칠맛을 최대치로 응축시켜 요리의 풍미를 전반적으로 끌어올려준다.
한식을 향한 뚝심
미쉐린 별을 받은 셰프에게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뉴욕으로 가기 3일 전에 알았어요. 처음에는 거짓말인 줄 알았죠. 요리하는 사람들에게 별은 로망 같은 거잖아요. 정말 꿈만 같았어요.” 앞으로 그가 선보일 한식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그가 주목한 부분은 우리 음식이 본질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급변하는 요즘을 살아가는 한국인의 일상 음식과 수십 년 전에 먹었던 음식이 과연 같은 한식이라 말할 수 있을까. “요즘 사람들은 밀가루에서 어떤 향이 나는지, 무슨 맛이 나는지 몰라요.

생선을 넣은 주악을 만드는 과정. 주악은 전통 병과 중 하나로 디저트에 가까운 음식이지만 윤서울에서는 한입 거리 애피타이저로 맛볼 수 있다. 찹쌀 반죽에 숙성된 전갱이를 넣어서 튀겼다.
우리나라 토종 밀을 수확하던 농부들과 방앗간이 있던 불과 40년 전과는 다른 얘기죠. 물론 그때와 지금은 기후나 환경에 의해서 식재료 맛이 미묘하게 달라졌을 수는 있지만요.” 사람들에게 모르고 있던 한식의 맛을 알려주는 것, 수십 년간 자연스레 놓치고 있던 한식을 되살려준다면 누군가는 그 음식을 통해 본질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맵고 달고 짠맛 외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던 본래 우리의 맛이 모두에게 매력적일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윤서울의 음식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레스토랑 한편에 자리한 제면기와 미트에이저. 셰프가 아낌없이 투자한 기물 중 하나다.

1 찹쌀 반죽에 숙성된 전갱이를 넣어 기름에 튀겨낸 주악은 겨자 소스를 찍어 한입에 먹는다.
2 일본에서는 유바湯葉, 중국에서 푸주腐竹라고 불리는 두부피 탕엽湯葉을 활용한 요리. 죽순과 멸치, 표고버섯을 넣은 솥밥을 죽장연 간장으로 맛을 내 탕엽에 말아 팬 프라이했다. 랍스터장과 새우장, 전복장을 함께 낸다.
3 직접 염장 처리해 만든 새우포와 가리비포로 맛을 낸 국물 요리.
4 터키와 프랑스 유기농 밀에 사천 백강밀과 녹두를 블렌딩해 만든 면. 소스는 갓 뽑은 신선한 들기름과 태안 자염을 사용했다.
윤서울
셰프의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과감한 도전이 느껴지는 한식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자가 제면 들기름과 드라이에이징 생선을 활용한 요리를 통해 기존과는 다른 독자적인 한식을 경험해볼 수 있다. — 디너: 12만 원
— 서울시 마포구 홍익로2길 31
— 오후 6시~오후 10시(일~화 휴무)
— 02-336-3323
Edit 박솔비 | Photograph 황성재 | Cooperate 미쉐린 가이드 서울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