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트에 담긴 스토리를 전하다
- gmthp1
- 2023년 1월 4일
- 4분 분량
솔밤 레스토랑의 엄태준 셰프

1++한우, 잣, 더덕
계절과 절기에 입각한 한국 식재료에 대한 연구와 이해 그리고 한국적인 요리 테크닉을 절묘하게 활용해 지금껏 맛보지 못한 새로운 플레이트를 선보이는 솔밤 레스토랑 엄태준 셰프의 음식 철학, 그리고 그의 음식 이야기.

캐비아, 고구마, 백김치, 대추

메추리, 트러플, 돼지감자
달빛에 비치는 소나무 : 솔밤
3년 전, 엄태준 셰프는 문득 ‘솔밤’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을 떠올린다. 달빛에 비치는 소나무가 아름다운 안동 ‘솔밤’ 마을은 엄태준 셰프의 고향이다. 그때부터 레스토랑을 열기로 결심하고 생각나는 대로 수첩에 적어나갔다. 레시피나 레스토랑의 콘셉트가 아니라 그의 수첩에 빼곡히 적힌 내용은 셰프의 기본 자세이다.
“호텔 주방에서 4년 근무하고 미국의 컬리너리 스쿨 C.I.A로 유학을 떠났어요. 그리고 일레븐 메디슨 파크에서 1년 정도 일하다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거의 20년 동안 주방 일을 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소신대로 꾸준하게 앞으로 밀고 나가는 힘이었어요. 또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은 헤드 셰프 주축의 팀 아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첩에는 어떤 사람과 함께 일했으면 좋겠다고 적어나갔어요.”
엄태준 셰프는 팀원을 뽑을 때 ‘어디에서 요리했고, 요리가 몇 년 차다’ 같은 경력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인성과 요리를 대하는 태도를 본다. 손으로만 열심히 일하는 것은 기술자다. 물론 주방은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운영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음식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마음으로부터 나온 진심을 다해 음식을 만들어야손님에게 의도한 메시지와 함께 감동을 전할 수 있다. 25인석. 솔밤 셰프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최선의 좌석 수이다.

시계의 작고 수많은 부품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자신이 하는 일과 많이 닮아 있어서 시계를 모으는 것이 취미라는 엄태준 셰프.
한국 식재료에 대한 통찰
통찰.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본다는 사전적 의미이다. “자연을 존경하면서 두려워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재료에 대한 관찰과 고찰을 너머 통찰을 통해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 보입니다.”
엄태준 셰프는 하나의 음식을 완성하기까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갈치 요리를 만든다고 하면 우선 갈치에 대한 기본 자료를 찾을 수 있는 만큼 다 찾는다. 그리고 예로부터 갈치를 어떻게 조리해서 어떤 음식을 만들고, 갈치가 많이 잡히는 바닷가 사람들은 어떻게 조리해서 먹었는지 다양한 각도로 조사한다. 그런 다음 갈치를 굽기도 하고 찌기도 하는 등 다양한 조리법으로 텍스처와 맛을 보며 다른 재료와의 밸런스를 찾는다. 갈치조림을 할 때 무는 빠지지 않는다. 겨울 무의 단맛이 슴슴하게 배어든 갈치조림에서 착안해 갈치와 무를 어떻게 풀 것인지 고민한 끝에 새로운 메뉴가 탄생한다.
“한국 음식 중 호박선이 있습니다. 호박에 소를 채우고 육수에 익히는 음식인데 새우젓으로 간을 맞춥니다.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는 것은 매우 한국적인 방식이죠. 여기서 착안한 요리가 병어에 애호박을 감싼 음식으로, 애호박과 새우젓으로 만든 육수를 소스로 곁들였습니다. 이 소스를 만들 때 프렌치 퀴진 테크닉을 접목합니다.”
모던 한식, 네오 프렌치, 컨템퍼러리… 솔밤은 한 장르로 특정되지 않는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것이 한국의 식재료가 지닌 장점이라고 말하는 엄태준 셰프. 그는 한국의 식재료를 새로운 접근법으로 풀어내 색다른 장르로 펼쳐낸다.

황세희 페이스트리 셰프, 김성은 페이스트리, 김태균 가드망제, 배성민 가드망제, 김한슬 앙트르메니에, 김종원 로스터, 서원득 주니어 수셰프, 박은정 수셰프, 솔밤의 메뉴판에는 팀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파인 다이닝은 팀 아트라고 말하는 엄태준 셰프의 철학이 담겨 있다.

솔밤 안동소주 - 안동의 대표적인 전통주인 안동소주와 컬래버레이션한 '솔밤'. 20년 동안 오크 캐스크에서 숙성해 오키한 향이 매력적이다.
스토리가 담긴 플레이트
“시골에서는 겨울에 고구마를 구워 먹고 있으면 동네 할머니들이 김치를 주고 가시곤 했어요. 고구마와 할머니의 김치, 최고의 조합이잖아요. 고구마와 김치의 조합은 요즘 말로 ‘단짠’의 정석이거든요. 여기서 착안한 요리가 ‘캐비아, 고구마, 백김치, 대추’(p.64참고) 입니다. 고구마 페이스트가 들어간 빵과 합 안에는 캐비아, 백김치, 하몬, 대추가 켜켜이 담겨 있어요. 고구마빵이 단맛을 묵직하게 잡아주고 백김치에 서 전해지는 산미, 캐비아의 녹진하면서 미네랄 가득한 짠맛이 조화롭게 어울립니다.” 솔밤의 음식을 먹 다 보면 마치 음식이 이야기를 건네는 듯하다.
‘메추리, 트러플, 돼지감자’(p.65 참조)는 의령에서 마늘을 먹여 키운 메추리로 만든 요리다. 메추리 가슴살 두 개를 붙이는 데 프레시 트러플을 갈아 넣어 대리석 마블처럼 단면이 보이도록 만들었다. 숯에 굽다 보면 트러플 향이 가슴 속살까지 깊게 밴다. 트러플과 감자, 이 클래식한 조합은 토종 돼지감자로 대신해 새로운 맛을 전한다.
‘1++한우, 잣, 더덕’(p.63 참조)의 한우는 100일간 드라이 에이징한 것으로, 곁들이는 건 액젓 소스이다. 드라이 에이징하는 시간, 액젓을 삭히는 시간. 시간과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쉬 엄두를 내지 못하는 메뉴이다.

작품에 따라서 분위기가 달라지는 미술관처럼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고 분위기가 달라 보일 수 있도록 인테리어를 완성한 솔밤의 내부, 하주형 제너럴 매니저와 고동연 헤드 소믈리에가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솔밤 레스토랑을 경험한 사람에게 솔밤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뭐냐고 물어보면, 특정 음식을 얘기하지 않길 바랍니다. 스토리가 담긴 음식 하나하나가 연계성 있게 유연하게 흘러가고 완벽한 페어링, 섬세한 서비스, 레스토랑의 분위기 등 식사가 끝났을 때 이 모든 것이 ‘솔밤스럽다’라고 평가 받고 싶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솔밤은 지루할 틈이 없는 감동의 다이닝’이라고 말한다. 코스 전 젓가락 고르기, 음식을 직접 섞어 먹거나 선물 상자를 열어보는 듯한 플레이트 등 오감을 만족시키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즐거움을 전한다.

솔밤 레스토랑에서는 자리에 앉은 다음 젓가락을 고른다, 식사를 하면서 음식에 따라 젓가락을 사용한다. 식사가 끝나면 손님이 사용했던 젓가락은 선물한다, 엄태준 셰프는 수많은 파인 레스토랑을 경험하면서 식사 중간에 젓가락을 사용하면 좋겠다고 느낀 적이 있다. 레스토랑을 떠나서도 젓가락을 사용할 때마다 솔밤 레스토랑에서의 좋은 추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길 바란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미국, 프랑스, 태국, 일본, 싱가포르 등지의 파인 다이닝을 어마어마하게 다녔어요. 그 경험을 나라별로, 지역별로, 연도별로 다 정리해놨지요. 그 경험들이 저에게는 큰 자산입니다.” 해외 유명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직접 경험해본, 본인이 가장 만족한 서비스를 솔밤에 적용했다. 플레이팅에서도 섬세함이 돋보인다. 음식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텍스처를 조합하는 부분도 중복이 없다. 세라믹, 목기, 유리그릇 등 기물의 소재에 비율을 정해두고 사용한다. 하다못해 도자기도 유약이 강한 것, 단순한 것을 따져보며 배열을 생각한다. 그릇을
직접 선택하기에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직접 도예가의 작품을 보러 다니거나 도예 졸업전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가 팀원들에게 항상 얘기하는 끈기와 노력을 몸소 보여준다.
칼, 날을 세우다

“칼날은 항상 서 있어야 합니다.” 엄태준 셰프는 매일 주방에 들어설 때마다 칼날을 확인한다. 아주 짧은 시간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서 일을 쳐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칼이 무뎌져 있으면 결국 시간 안에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결과물이 좋을 수가 없다. 칼날이 곧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대변한다고 그는 말한다. 주방 팀원에게 항상 칼 관리 잘하고 올바르게 갈아 두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주방에서 일할 때에는 칼날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신경도 날이 서 있어야 한다. 칼은 일주일에 한두 번 가는데, 칼을 가는 순간 아무 생각이 없
어지면서 정신이 맑아진다고. 칼을 갈다 보면 스트 레스도 함께 풀린다.
칼을 소중히 생각하는 만큼 칼 욕심도 많다. 그가 애정하는 네노히 브랜드의 칼은 장인이 직접 칼을 두들겨 만든 뒤 기린 뼈 손잡이에 끼워 완성한다. 기린 뼈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색은 어느 하나 똑같은 것이 없다. 100% 수작업으로 만들기 때문에 이 칼을 받기까지 2년이 걸렸다고 한다. 손잡이가 묵직하고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이 아주 만족스럽다. 칼날은 유쿠로사키에서, 옻칠한 손잡이는 김천의 이희만 장인에게 부탁해 만든 칼을 보면 칼에 대한 진심, 즉 음식에 대한 진심이 읽힌다.
솔밤
—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37길 6, 4층
— 0507-1385-7308
Edit 양연주 | Photographs. 류현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