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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낫

PET-NAT

 

반려동물 금지(pet not!)라는 뜻인가? ‘펫낫(Pet-nat)’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든 생각이다. 이 단어가 매우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 나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내추럴 와인이 유행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지금, 어느덧 펫낫은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꽤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펫낫은 프랑스어 ‘페튀앙 나튀렐petillant naturel’의 줄임말로 ‘자연적인 기포’라는 뜻이다.


 


펫낫과 스파클링 와인의 차이


일반적인 스파클링 와인은 포도를 짜서 얻은 주스를 발효해 와인으로 만든 뒤(1차 발효), 효모와 당분을 추가해 인위적으로 한 번 더 발효시켜(2차 발효) 와인의 기포를 ‘일부러’ 만든다. 샴페인, 카바, 스푸만테 등이 이런 방법으로 만드는 스파클링 와인이다. 그러나 펫낫은 포도를 짜서 얻은 주스를 발효해 와인이 완성되어갈 때쯤 병에 넣고 뚜껑을 막는다. 병 안에서 나머지 발효가 진행되고, 이때 생기는 이산화탄소가 와인에 녹아들어 ‘자연적인 기포’가 되는 것이다. 즉 펫낫과 스파클링 와인의 가장 큰 차이는 와인 속 기포를 만드는 일이다.


펫낫과 일반 스파클링 와인 중 어떤 것이 더 좋은 와인이냐 묻는다면 선택하기 어렵다. 와인에 대한 신념과 지향점, 그리고 기준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반면 둘 중 어떤 것이 더 과일의 모습과 닮았냐고 묻는다면 쉽게 답할 수 있다. 펫낫, 특히 잘 만든 펫낫일수록 포도에서 얻은 주스를 그대로 담아 만든다. 여담이지만 좋은 펫낫은 생산자 얼굴을 보기가 힘들다는 말이 있다. 프랑스에 살던 시절, 내게 와인을 알려주었던 스승은 “펫낫 잘 만드는 사람은 만나기가 힘들다”라는 말을 건네곤 했다. 프랑스 곳곳에서 열리는 와인 페어를 다니다 보면 대부분의 와인 생산자는 만날 수 있었지만, 실제로 펫낫 생산자는 만나기 어려웠다. 펫낫을 만드는 것은 그 어떤 와인을 만드는 것보다 섬세하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생산자가 국내외 여러 행사장을 다니며 얼굴을 비치기에는 집에 두고 온 와인들이 눈에 밟혀 잘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펫낫의 매력


펫낫은 어떤 음식과도 둥글둥글하게 잘 어울린다. 음식이 미처 채우지 못한 부분을 은은하고 화사한 향으로 채워주기도 하고, 음식의 훌륭한 부분을 톡톡 건드려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굴에는 샤블리’ 공식 같은 페어링은 없는 편이지만 펫낫을 더 맛있게 즐기는 아주 쉬운 방법으로 ‘컬러 페어링’과 ‘시즌 페어링’이 있다.


컬러 페어링은 펫낫의 색과 비슷한 색깔의 음식을 곁들이는 것이다. 딸기빛이 감도는 로제 펫낫에 딸기를 듬뿍 넣은 케이크나 과일 샐러드를 곁들여보자. 딸기의 향과 생크림의 조화가 펫낫의 베리 뉘앙스, 크리미한 질감과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샐러드의 경우 채소와 과일의 향이 펫낫의 향과 어우러지며 마치 드넓은 딸기밭에서 맘껏 뒹굴며 뛰노는 듯한 기분을 준다.


시즌 페어링은 제철 음식에 펫낫을 곁들이는 것이다. 무슨 이런 뻔한 소리를 하는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제철을 맞은 굴이나 꽃게에 칠링한 화이트 펫낫을 마셔보면 이보다 더 좋은 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내가 경험한 최고의 펫낫 페어링도 사바냥 와인을 넣어 만든 소스를 살짝 끼얹은 제철 아스파라거스 요리에 샤르도네 품종으로 만든 희뿌연 화이트 펫낫을 곁들인 것이었다. 역시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확실하다.



펫낫을 즐기는 방법


펫낫은 대부분 침전물이 많은 편이다. 막걸리를 마실 때 흔들지 않고 맑은 윗물만 마시는 것과 흔들어 마시는 것이 취향 차이라고 한다면, 펫낫은 흔들어 마시는 것을 필수로 권유하고 싶다. 맛과 향이 훨씬 다양해지고 증폭되기 때문이다. 다만 억지로 흔들어서 겨우 안정시킨 펫낫을 다시 자극하지는 말고, 여러 번 잔에 따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와인과 침전물이 섞이며 변화하는 맛을 즐겨보자. 뒤로 갈수록, 침전물이 섞일수록 더 복합적이고 짙은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펫낫은 과일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장기 숙성보다 제철에 빠르게 마시는 것이 좋다.


펫낫은 만드는 과정만큼이나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 무턱대고 잠을 깨웠다간 “빼엑” 하고 울어버리며 신나게 흘러넘칠 수 있다. 거품 폭탄과 함께 병에서 반쯤 사라진 펫낫을 보며 아쉬워하지 말고 여유와 인내심을 가지자. 펫낫 잘 다루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펫낫을 칠링한다. 차가운 얼음물에 와인이 완전히 잠길 정도로 담가 20분 이상 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45도 정도로 기울인 상태에서 오프너로 캡을 아주 조금 열어보자. 이때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려는 기미가 보인다면 아주 천천히 시간을 두고 기포가 빠지길 기다린다. 어느 정도 진정된 기미가 보인다면 그때 연다. 어떤 방법으로든 펫낫을 열 때 샴페인처럼 터질 경우를 대비해, 흘러넘치는 와인을 받을 컵 정도는 준비해두자.


우리는 때로 와인을 너무 복잡하게 마시려고 한다. 그러나 이 수많은 복잡한 요소를 생각하기에 인생은 너무도 짧고, 펫낫을 즐기기 좋은 날씨는 더더욱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자신의 취향에 딱 맞아떨어지는 펫낫을 골라 이 아름다운 계절을 만끽해보자. 즐거운 장소, 좋아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날씨, 분위기를 즐기며 펫낫을 벌컥벌컥 마시는 이른바 ‘무드 페어링’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 모두 더 많이, 더 즐겁게, 그리고 더 행복하게 펫낫을 마시자.


 

1 꼴레포르미카, 포르미카 파짜 지알라 Colleformica, Formica Pazza Gialla

이탈리아 라치오 지역 소규모 와이너리에서 이탈리아 대표 품종인 말바지아와 트레비아노로 만든 펫낫이다. 청사과, 레몬 등의 과실미와 함께 파인애플, 파파야 등의 열대 과일 뉘앙스가 두드러진다. 파인애플을 넣은 하와이안 피자, 망고를 올린 빙수처럼 열대 과일이 포함된 음식과 재미있는 조화를 보여준다.

문의 포도당(02-3437-1208)


2 사우로 마울레, 스가스Sauro Maule, Sgass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지역에 위치한 와이너리에서 만든 펫낫. 화산토가 섞인 독특한 토양으로 와인에서 특유의 밝은 산도와 미네랄리티, 은은하게 느껴지는 쵸크chalk 뉘앙스를 느낄 수 있다. 발랄한 열대 과일의 향과 사과, 자몽, 레몬 등이 잘 어우러져 고수와 향신료를 듬뿍 넣은 태국 음식과 재밌는 조화를 이룬다.

문의 윈비노(070-4531-5210) | 인스타그램 @winvino.korea


3 옥타방, 베티뷸 블랑 Domaine L'octavin, Betty Bulles Blanc

프랑스 쥐라 지역의 톱 내추럴 생산자 옥타방의 펫낫. 몰레트, 뮈스카, 비오니에 포도를 친구들에게서 사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양조한 와인이다. 에너지 넘치고 톡톡 튀지만 섬세한 면이 생산자인 앨리스 부보와 많이 닮았다. 서양배, 청사과, 레몬 뉘앙스가 두드러지고 흰 꽃 내음이 은은하게 풍긴다. 희소성이 매우 높은 와인이니 눈에 띄면 바로 챙기자.

문의 SJ Wine Group(02-3012-4019)



4 들루헤 그레프티, 헬레나 Dluhe Grefty, Helena

아름다운 가족이 운영하는 체코의 자그마한 와이너리 ‘들루헤 그레프티’의 펫낫. 그중 첫째 딸 헬레나의 얼굴이 담겨 있는 퀴베 ‘헬레나’는 동유럽의 대표적 품종인 생로랑, 블라우프랑키쉬, 츠바이겔트로 만들었다. 딸기, 라즈베리를 잔뜩 갈아 넣은 새콤하고 상쾌한 주스를 마시는 것처럼 톡톡 튄다.

문의 이스티 와인즈 | 인스타그램 @yeastywines


5 레 꺄프히아드, 펫섹 블랑 Les Capriades, Pet Sec Blanc

‘펫낫의 왕’으로 불리는 파스칼 포테르Pascal Potaire와 모스 가두슈Moses Gadouche가 만드는 프랑스 루아르 지역 펫낫. 청사과, 레몬, 꿀 뉘앙스가 은은한 돌 내음과 함께 산뜻하게 어우러진다. 쨍한 산도와 크리미한 질감, 우아한 기포감은 잘 만든 블랑 드 블랑 샴페인이 떠오를 정도다. 레몬즙을 잔뜩 뿌린 흰 살 생선 요리 등 소스를 많이 곁들이지 않은 해산물 요리와 잘 어울린다.

문의 뱅베(010-3689-9632) | 인스타그램 @vinv.kr


6 오리건 말루프, 로 에피쎄 Maloof, L'Eau Epicee

미국 오리건 지역에서 만든 펫낫. 강렬한 과일과 꽃향기의 대명사인 리슬링과 게부르츠트라미너를 섞어 ‘향신료의 물’이라는 이름처럼 다채롭고 풍성한 향을 표현한다. 사과, 배, 레몬 등의 다양한 과실미와 꿀, 생강, 허브 뉘앙스가 예리한 산도와 함께 팡팡 터진다. 오리건 지역의 펫낫이 흔치 않기 때문에 멋진 경험이 되기에 충분하다.

문의 이스티 와인즈 | 인스타그램 @yeastywines


7 발 드 콤브레, 고스트 인 즈 바틀Val de Combres, Ghost in Ze Bottle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발 드 콤브레 와이너리의 첫째 아들 샘Sam이 핼러윈에 그린 그림을 라벨에 그려 넣었다. 자글자글한 기포의 느낌이 조그만 유령들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고. 자몽의 달콤 쌉싸름한 느낌과 은은한 딸기, 살구, 복숭아 향이 매력적이다. 채소 오븐 구이, 샐러드 등 신선한 제철 채소 요리와 잘 어울린다.

문의 카보드(02-790-1029) | 인스타그램 @kavodseoul


 


황윤하 푸드 매거진 <라망> 에디터, 내추럴 와인 수입사 ‘뱅베’ 등을 거쳤다. 현재 독서 모임 커뮤니티 서비스 스타트업 ‘트레바리’에서 F&B 브랜드 기획 · 운영을 담당하며 먹고 마시는 것으로 세상을 더 지적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더 친하게 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younhanara


Edit 박솔비 | Text 황윤하 | Photograph 황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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