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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발견 노르망디

ON THE ROAD NORMANDIE

 
노르망디 에트리타트 절벽의 탁 트인 전망. 멀리로는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예배당과 아발 절벽, 아치와 바늘이 보인다.

프랑스 북서부의 노르망디는 치즈와 사과주, 해산물로 유명하지만 사프란 아이스크림과 상쾌한 칼바도스 칵테일처럼 예상치 못한 미식가의 발견이 이어지기도 하는 지역이다.


 

풀밭에 널리 퍼져 있는 보라색 꽃잎 외에는 아무런 색도 존재하지 않는 안개 낀 아침이었다. 노르망디의 유기농 사프란 농장인 도멘 드 고빌Domaine de Gauville에서는 인부 여럿이 고리버들을 엮어 만든 바구니를 옆에 끼고 웅크려 앉아 크로커스 꽃을 따고 있었다. 꽃봉오리가 아직 단단하게 닫혀 있는 이른 아침에 꽃송이를 수확해야 한다. 그런 다음 꽃잎을 열어 귀중한 붉은색 꽃술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붉은 금’이라고 불리는 사프란은 수 세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제일 비싼 향신료였다. 전 세계 사프란의 약 90%는 이란에서 재배되지만 프랑스산 사프란 또한 품질이 좋아서 수요가 높다. 11세기에 십자군이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이동했다가 프랑스로 돌아오는 길에 처음으로 크로커스 구근을 들여왔다. 이후 사프란 생산은 1300년대까지 프랑스 문화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면서 큰 규모의 세금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세 번 연속으로 혹독한 겨울이 닥치고 질병이 돌면서 구근이 약해진 데다 꽃을 손수 수확해야 하는 특성상 노동 강도가 높았던 탓에 19세기에 들어서는 산업이 쇠퇴하고 말았다. “마지막 사프란 농장이 문을 닫은 것이 1956년의 일이었지요.” 함께 젖은 땅에 무릎을 대고 바구니에 섬세한 꽃송이를 담으며 미리암 뒤텔Myriam Duteil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미리암은 뉴욕의 공영방송사 PBS에서 미디어 임원으로 일하다가 프랑스로 돌아온 후 2001년에 프랑스 푸드 네트워크를 론칭했다. 그러다 10여 년이 지난 후 관심사가 바뀌기 시작했다. 농부였던 어머니와 할머니처럼 땅에 끌리게 된 것이다. 2015년이 되자 미리암은 6ha의 부지와 기업가 정신, 인도에서 수입한 2만여 개의 구근을 모두 갖추기에 이르렀다. 이후 사프란을 1kg(프랑스의 사프란 생산량은 총 200kg이다) 생산하면서 주요 생산자로 자리매김했다.




요리에 포인트가 되어주는 사프란


“사프란은 요리에 사용하는 식재료일 뿐만 아니라 약용식물로서의 효과도 지니고 있어요.” 미리암은 바구니를 주방으로 가져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소화를 돕고 천연 항우울제로 작용하지요.” 사프란은 수확한 당일에 건조시켜야 하므로 미리암의 어머니는 주방 식탁에서 조심스럽게 붉은 꽃술을 따내 수분이 제거되도록 리넨 천 위에 얹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미리암은 병 하나의 뚜껑을 열고 내 코 아래에 가져다 댔다. 꿀 냄새가 났다.

“나는 사프란을 항상 가닥으로 판매해요. 절구에 빻으면 쉽게 가루를 낼 수 있지요. 사프란은 가격이 비싸지만 1인당 두어 가닥만 넣으면 충분해요. 1g이면 한 가족이 1년간 사용할 수 있어요.” 미리암은 수제 사프란 아이스크림 통을 꺼내 나에게 한 숟갈을 건넸다. 나는 무슨 맛인지 알아내기 위해 애썼다. “바닐라?” 미리암이 미소 지었다. 레시피에 바닐라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사프란에 우유와 설탕을 넣으면 바닐라 향이 나요.”


사프란 수확기에 손수 모으는 꽃.

미리암은 인근 농산물 시장과 내가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한 근처 레스토랑 르 로기 드 브리온에 사프란을 공급한다. 르 로기 드 브리온의 셰프 알랭 드푸아Alain Depoix는 제철 식재료로 만든 섬세한 요리를 선보인다. 점심 메뉴의 하이라이트는 셀러리 퓌레와 트러플 마스카르포네 에멀션을 곁들인 ‘트러플 달걀 파르페L’oeuf Parfait aux Truffes’였다. 63℃에서 1시간 40분간 천천히 요리해 만든 셀러리 퓌레와 버섯 에멀션은 접시를 박박 긁어서 먹고 싶을 정도로 달콤하고 진하면서도 숲속의 흙바닥처럼 톡 쏘는 풍미에 병아리의 솜털처럼 가벼운 질감이 매력적이다. 사프란은 디저트 메뉴에서 주인공처럼 등장한다. 피처럼 붉은 사프란 소스에 익힌 배, 아몬드 크림을 곁들인 메뉴였다.



노르망디의 풍성한 식재료


영국해협 바로 건너에 있는 노르망디는 짧은 미식 휴가를 즐기고 싶을 때 가장 쉽게 찾아갈 수 있는 프랑스 지역에 속한다. 30곳 이상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은 물론 6월에 오르베크Orbec에서 열리는 카망베르 축제, 7월에 덴빌Denneville에서 열리는 굴 축제, 8월에 리바로Livarot에서 열리는 치즈 축제, 10월에 우이스트레암Ouistreham에서 열리는 가리비 축제, 그림 같은 뵈브롱앙오주Beuvron-en-Auge에서 매년 열리는 사과주 축제까지, 갖은 음식 축제 일정이 달력을 빼곡하게 채운다.


길이가 370마일에 달하는 해안선에는 해산물 메뉴가 그득하다. 이 지역의 굴에는 고유한 AOC(원산지 명칭 통제)가 붙어 있으며, 생 자크 가리비의 고향인 만큼 포르탕베생Port-en-Bessin의 가리비도 유명하다. 시골 지역은 푸르고 무성한 풀숲이 가득해 토종 가축을 방목해 유제품을 생산한다. 노르망디의 치즈 보드에 오르는 4대 치즈로는 리바로livarot와 뇌샤텔neuchatel, 퐁 레베크pont l’eveque, 카망베르 드 노르망디camembert de Normandie가 있다. 완만한 언덕에는 사과주인 칼바도스와 푸아레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사과와 배 과수원이 가득하다.


옹플뢰르 항구의 파노라마 뷰.

시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굴.

힘든 하루를 마친 후 나는 뵈르뇌유쉬라브르Verneuil-sur-Avre의 18세기 건물로, 지금은 우아한 B & B로 운영하는 샤토 드 라 퓌제Chateau de la Puisaye의 동쪽 방에 짐을 풀었다. 영국인 소유주인 다이애나와 브루노 코스테스는 수년을 들여 나폴레옹 3세 성을 개조해 여러 객실을 갖춘 본관과 마구간 위 원룸 객실, 오래된 사냥용 오두막인 휴가용 별장 등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원목으로 꾸민 식당에서는 수제 빵과 잼, 과수원에서 따온 과일, 현지의 치즈 등으로 구성된 맛있는 아침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다음 날에는 푸아레를 만나러 페름 드 로니에르Ferme de l’Yonniere로 향했다. 배로 만든 탄산이 들어간 PDO(원산지 보호 지정) 술이자 노르망디식 샴페인이나 다름없는 푸아레를 생산하는 사람은 딱 20명뿐인데, 제롬 포제Jerome Forget가 그중 한 명이다. 목가적인 15ha 규모의 농장에서는 방목 중인 소들이 풀을 뜯으며 낮은 과일나무 가지를 먹어치우고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 완전한 친환경적 시스템이다. 과일이 익어 떨어지기 시작하는 8월부터 10월 사이에는 소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서 배나 사과를 짓밟거나 먹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한다. 폭신하게 자라난 잔디는 과일이 떨어질 때 손상되지 않게 하는 쿠션이자 서늘한 기온을 유지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과일이 땅바닥에 툭툭 떨어지는 소리를 밤새도록 들을 수 있어요.”


허브를 곁들인 카망베르 치즈.

제롬은 작은 사과 하나를 맛보라고 건네주며 미소를 지었다. 아삭아삭하고 새콤하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즙이 풍부했지만, 동시에 입안을 잔뜩 오므리고 혀를 까끌거리게 만들 정도로 떫었다. 제롬은 수령이 200~300년에 달하는 오래된 나무 300그루와 어린 나무 400그루를 보유하고 있다.“배나무는 완전히 자라는 데 100년, 살아가는 데 100년, 죽어가는 데 100년이 걸린다고 하지요." 과일은 오래된 헛간에서 압착한다. 제롬은 다른 헛간에 설치한 반짝거리는 발효 탱크로 나를 안내했다. 그 옆의 작은 시음실에는 푸아레, 배와 사과즙, 사과주, 칼바도스 통이 가득했다. 바 위에는 인근 빵집에서 가져온 따뜻한 빵 한 접시가 놓여 있었다. 그중 하나에는 퐁 레베크 치즈와 배가, 다른 하나에는 카망베르와 사과가 담겨 있었다. 제롬은 나에게 푸아르 돔프롱 한 잔을 따라줬다. 드라이하면서 새콤한 맛이 났다. “송어와 잘 어울려요.” 제롬이 말했다. “그리고 홍합 크림 요리에 화이트 와인 대신 넣어도 좋지요.” 그는 샴페인 제조 방식을 차용해서 침전물을 제거해 거품이 훨씬 곱고 촘촘한 푸아레를 만들어낸다. 발효 과정은 천연 그대로를 따른다.


다음 목적지는 바뇰드오른Bagnoles-de-l’Orne의 앙덴Andaines 숲 가장자리에 자리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이 있는 호텔 마누아 뒤 리Manoir du Lys로, 오래된 사냥터 오두막을 개조해 지금은 가족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프랑크 퀸톤Franck Quinton 셰프의 요리 클래스와 미식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호텔 주변의 예술 작품에서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맛있는 버섯 빵과 버섯 버터에 이르기까지 버섯이 시그너처를 이룬다. 가을이면 이 호텔에서는 현지 버섯 전문가의 가이드와 함께 인근 숲을 누비며 야생 버섯을 채집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빽빽한 덤불을 헤메면서 바구니 가득 버섯을 채집한 다음(그물버섯cepe de Bordeaux에서 등색껄껄이그물버섯bolet orange까지 다양하다) 호텔로 돌아와 그날 채집한 버섯을 분류하며 설명을 들은 후 버섯을 주제로 한 저녁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식사에는 달콤하고 은은한 흙 냄새가 매력적인 버섯 라비올리가 나온다.



노르망디 사과주의 풍미


집으로 돌아가는 페리를 타기 전 마지막으로 로츠의 작은 마을에 자리한, 165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5대째 이어온 가족 농장 페름 드 빌리에 들렀다. 120ha 부지에 줄지어 늘어선 2만 4,000그루는 물론 13세기 양식 예배당 주변에 점점이 흩어진 사과나무가 눈길을 이끄는 곳이다. 페름 드 빌리는 새로운 품종의 사과주를 생산하면서 차세대 사과주 제조업체로 떠오르고 있다. “노르망디 사과주가 유명하기는 하지만, 평범한 사과주는 이곳에선 모두가 만들고 있어요. 우리는 조금 더 현대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싶었죠.” 파리와 뉴욕에서 근무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하고 농장에 돌아온 올리비에 보브레시Olivier Vauvrecy가 설명했다.


칼바도스 증류소의 참나무 배럴.

칼바도스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사과.

올리비에는 최근 파리에서 사과주 칵테일을 선보이는 팝업 바를 운영했고, 데번에 거주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사과주 생산업자 바니 버터필드Barney Butterfield와 협력해 노르망디와 영국의 사과주를 섞은 컬래버레이터즈The Collaborators를 만들어냈다. 또 형제와 함께 헛간 같던 건물을 주말이면 대규모 뷔페 브런치를 선보이는 소박하고 세련된 레스토랑으로 개조했고, 정원에는 화덕과 낮은 의자를 설치했다.


바에 선 올리비에는 시음용으로 사과주 여러 병을 개봉했다. 여기서는 사과주는 물론 폼모 드 노르망디pommeau de Normandie 등 다양한 식전주와 식후주를 생산한다. 2년 된 칼바도스는 샴페인이나 토닉워터, 민트와 사과즙으로 만드는 칵테일과 잘 어울리고, 더 깊고 진한 맛이 나는 5년 된 오크 숙성 칼바도스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둘러 먹기 제격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올리비에가 강조하고 싶은 건 뭐니 뭐니 해도 사과주였다. 올리비에는 활용도 높은 사과주가 와인의 현대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녁 식사에 곁들이기 좋은 것은 브뤼brut 종류예요. 타닌이 살짝 있고 쓴맛이 돌지요.” 최근에 출시한 프레쇠르fraıcheur는 산미가 더 강하다. “디저트와 퐁 레베크 치즈, 생선과 잘 어울리지요.” 올리비에가 미소 지었다. 노르망디의 번화한 항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작은 기회가 되어줄 만한 농장이었다.


시나몬과 사과를 곁들여 뜨겁게 마시는 칼바도스.


 

INFO


포츠머스, 풀, 플리머스에서 출발해 노르망디까지 운행하는 브리타니 페리Brittany Ferries는 포츠머스에서 캉 기준으로 승객 2인과 자동차 1대의 경우 편도 85파운드부터(brittanyferries.com).

샤토 드 라 퓌제 B & B의 더블 룸은 88유로부터, 마누아 뒤 리 더블 룸은 124유로부터. 더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normandy-tourism.org)를 참조할 것.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계정(@lucygillmore)에서 루시의 여행 이야기를 살펴보자.




Edit 왕민아 | Word & Photograph 루시 길모어Lucy Gill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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