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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의 작은 알자스, 레돔

A GLASS OF NATURE

 
삶과 와인에 자연을 담으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도미니크 에어케, 신이현 부부. 작은 알자스를 열고 부부는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충주의 땅과 햇빛, 바람으로 채운 한 잔의 와인에는 도미니크 에어케, 신이현 부부의 아득한 꿈이 담겨 있었다.


 


한국의 작은 알자스


사과를 착즙해 발효시켜 만든 와인을 프랑스에서는 시드르cidre(영어로는 사이더cider)라 부른다. 시드르는 프랑스와 영국에서 즐겨 마시는 대중적 음료로 사과즙을 발효탱크에 넣어 천천히 발효해 만든다. 다른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해왔던 시드르가 한국에서 생명 역동 농법으로 생산된다는 흥미로운 소식을 접하고 충주로 향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 충북 충주 수안보 조용한 마을에 자리한 ‘작은 알자스’는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Dominique Herque와 소설가 신이현 부부가 사과와 포도를 직접 길러 와인을 만드는 양조장이다. 작은 알자스는 도미니크가 엔지니어라는 직업을 과감히 내려놓고 농부의 꿈을 실현한 곳이다.


포도밭을 지키는 거위와 닭들. 와인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는 모두 밭으로 가 퇴비가 되고 새와 닭들에게도 맛있는 모이가 되어준다. 닭들이 똥을 싸면 퇴비가 되거나 지렁이가 받아먹고, 지렁이가 땅에 구멍을 내고 돌아다니면 흙에 공기구멍이 생겨 포도나무들이 좋아하며 숨을 쉰다.

발효탱크 안에서 시드르는 수개월 동안 숙성의 시간을 거친다.

프랑스 파리에 살던 부부가 왜 충주에서 작은 밭을 일구고 양조장을 세우게 되었을까. 프랑스 알자스에서 나고 자란 도미니크는 포도주를 양조하는 외조부의 영향을 받아 언젠가 농부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물론 아내 신이현 대표의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부부는 농사를 짓기로 결심하고 2017년 프랑스를 떠나 충주에 정착했다. “와인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농사예요. 건강하고 맛있는 과일이 와인 맛의 대부분을 결정하죠. 충주는 온천이 유명할 만큼 물이 좋고 일조량이 풍부해요. 지대가 높아서 일교차도 크기 때문에 과일 농사가 잘될 수밖에 없죠. 충주를 테루아로 정한 이유예요.” 신이현 대표가 말문을 텄다. 남한강의 물줄기를 따라 자리 잡은 충주호, 달천, 요도천까지 곳곳에 풍요로운 물길이 있고 땅이 비옥한 이곳은 부부가 생각하는 와인을 만들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막연한 꿈을 안고 한국으로 향하며 두려움을 느낀 것도 잠시, 5년 차에 접어든 이들 부부는 행복한 농부가 되어가고 있다. “언제부턴가 장화를 신고 포도밭에 들어서는 순간이 좋아졌어요. 우리가 밭에 들어서면 나무들이 좋아서 이파리를 흔들며 소리를 내는 것만 같아요(하하).” 신이현 대표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별을 노래하는 사람

도미니크는 포도밭에 있을 때 제일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날도 어김없이 포도밭으로 향해 나무를 살폈다.

농부는 사전에 ‘농사짓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되어 있지만, 농부農夫의 한자를 풀이하면 ‘별을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사실은 후자가 맞는 말이다. 농부는 땅과 하늘의 유기를 알고 계절의 순환을 가장 먼저 손끝으로 느끼는 사람이다. 도미니크 에어케, 신이현 대표는 땅을 키우는 차별화된 농법인 생명 역동 농법Biodynamic Agriculture으로 농사를 짓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한 방식이지만 나무와 열매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땅도 함께 돌보며 우주의 기운으로 짓는 농사를 뜻한다. 제초제나 살균제 등 화학 성분은 일절 사용하지 않고, 땅을 강한 햇빛과 바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미네랄을 듬뿍 품은 검은흙, 보리 짚으로 덮는 식이다. 낮 동안 햇빛을 흡수하게 하고, 밤에는 이불을 덮은 것처럼 나무뿌리를 따뜻하게 보온해 열매가 달콤하게 익도록 도와준다. 수년 동안 이런 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레 나무의 생존력이 강해지고 땅은 더 비옥해진다. 이뿐 아니라 식물에 영향을 주는 별자리의 움직임을 기록한 달력을 농사에 반영한다.


발효탱크에서 와인을 꺼내 잔에 따르는 모습.

식물은 저마다 좋은 기운이 있는 날에 생명력을 더욱 뿜어내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움츠러든다. 이런 원리를 따라 도미니크는 나무와 열매를 대할 때 별자리 달력을 펼치고 식물에 이로운 날을 받는다. 비단 농사를 지을 때만이 아니라 시드르와 와인을 만들 때에도 이런 수고와 정성을 들인다. “땅과 땅속 미생물을 돌보면서 땅심이 강해지도록 사람은 그저 도울 뿐이에요. 모두 자연의 힘을 빌리는 거죠.” 도미니크는 사람이 혼자 살 수 없듯이 식물도 마찬가지라며 자연의 힘을 강조했다. 밭 주변으로 수많은 식물이 자라고 거위와 닭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다양한 종이 함께 어울릴 때 모자란 것을 서로 채우면서 나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수확한 열매는 밭에 사는 수많은 식물에서 나오는 야생 효모의 도움으로 와인의 맛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미니크는 이 보이지 않는 효모들을 살아 있는 인격체처럼 대하며 돌본다. 날씨가 추울 때는 탱크 속 효모들이 얼어 죽지 않도록 난로를 피우고, 여름에는 덥지 않도록 냉방기를 가동한다. 어둠 속에 웅크린 효모들이 놀라지 않도록 작업장 문도 조심스레 여닫는다. “우리는 그저 와인 속 효모가 하는 대로 따라갈 뿐이에요. 언제 발효를 끝낼지, 당을 얼마나 남겨줄지, 알코올 도수는 몇 도가 될지 이건 모두 효모 마음에 달렸거든요.” 도미니크가 설명하는 생명 역동 농법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자연 그대로가 담긴 와인

부부는 하루 종일 모든 시간을 함께한다. 수시로 발효탱크에서 꺼낸 시드르를 맛보고 양조장 옥상에 올라 저 멀리 포도밭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작은 알자스의 레돔Lesdom 시드르는 펫낫pét-nat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1년에 한 번 늦가을에 수확하는 충주 사과를 착즙해 얻은 주스를 탱크 안에 넣고 야생 효모들의 작용에 기대 천천히 발효시킨다. 겨우내 수차례 탱크를 바꿔주다가 봄에 와인이 완전히 숙성할 무렵 병에 넣어 뚜껑을 막는다. 병 안에서 나머지 발효가 진행되는데, 이때 생기는 이산화탄소가 녹아들어 ‘자연적 기포’가 만들어진다. 이후 여름에 병목에 모인 찌꺼기 제거 작업을 거친 후 코르크로 막고 철사로 봉인하면 사계절이 오롯이 담긴 내추럴 시드르가 완성되는 것이다. 잘 만든 펫낫일수록 사과나 포도에서 얻은 주스를 그대로 담아 만든다. 물론 아무것도 넣지 않고 필터링이나 살균도 거치지 않는다. 설탕이나 효모를 첨가해 인위적으로 도수를 정하고 기포를 만드는 일반 스파클링 와인과 달리, 펫낫은 매해 과일의 맛과 당도가 다르듯 당연히 알코올 도수도, 맛도 다르다.


내추럴 시드르는 도미니크의 애칭을 따 레돔Lesdom이라고 이름 붙였다.

도미니크가 웃으며 시드르를 한 잔 건넸다. “내추럴 와인 한 병은 와인이 온 땅과 그해의 비바람, 그 풍경을 병 속에 봉인해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린 오로지 과일이 자란 땅의 성격을 그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할 뿐이고요. 한 잔의 와인을 마신다는 건 땅 한 움큼의 땅을 들이켜는 것과 같죠.” 도미니크가 건넨 시드르 한 잔에는 그 해에 수확한 사과의 맛과 날씨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했다. 입안을 감싸는 은은한 단맛, 부드러운 탄산, 풋풋하고 싱그러운 사과의 풍미까지. 자연이 고스란히 담긴 시드르의 맛은 단순히 ‘맛있다’라는 형용사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시드르 한 모금에 과일이 자라온 땅과 나무, 햇빛과 바람을 느끼고 있으니 감동이 배가되었다. 시드르 시음을 끝으로 어느덧 작은 알자스에서의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생명 역동 농법으로 만드는 와인이 궁금해 떠나온 충주에서 마음에 담아온 건 훌륭한 시드르만이 아니었다. 자연에 기대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현재의 소중한 시간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혹자가 설렘을 안고 충주를 걷고 달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Edit 박솔비 | Photograph 조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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