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원의 이타닉 가든
- gmthp1
- 2022년 8월 1일
- 4분 분량
EATANIC GARDEN

한국인 셰프로서 언젠가 한국의 색을 진하게 담은 음식을 할 것이라고 생각해온 손종원 셰프. 이타닉 가든은 셰프가 그리던 꿈이 좀 더 빨리 실현된 곳이다.

라망시크레의 셰프, 이타닉 가든의 셰프가 되다
조선 팰리스 최상층인 36층에 자리한 이타닉 가든은 손종원 헤드 셰프가 이끄는 이노베이티브 레스토랑이다. 올 초 이타닉 가든이 잠시 문을 닫고 리뉴얼을 감행하는 동안 미쉐린 1스타 라망시크레의 주역 손종원 셰프가 이타닉 가든에 새롭게 합류한다는 사실만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기도 했다. 라망시크레에서 양식을 하던 셰프가 이타닉 가든으로 오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요리하는 한국인으로서 최종적으로는 한국의 색을 진하게 담은 음식을 하게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사실 이런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지만요.” 셰프가 말문을 열었다. 기존 이타닉 가든과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을 법도 한데 손종원 셰프는 의연했다. 그동안 라망시크레가 서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양식을 선보여왔다면 이타닉 가든은 한국적 요소를 가미한 이노베이티브 퀴진을 선보인다.

이타닉 가든 키친의 셰프들. 벽면에 있는 ‘evolve’는 손종원 셰프가 직원들에게 꾸준히 상기시키는 단어다. ‘evolve’는 점진적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다.

주방 직원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그는 팀원 개개인의 생각이 중요하고, 다양한 사람의 생각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협업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현재에 존재하는 것을 비틀거나 변형한 것이 컨템퍼러리라면 이노베이티브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 생각해요. 미국에서 CIA 요리학교와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을 거치면서 다양한 분야의 요리를 경험했고, 라망시크레를 맡으면서 개인적으로 궁중 음식을 배워보기도 했지만 현대적인 한국 음식이 무엇인지, 제 요리에 어떻게 녹여낼지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셰프는 전통적인 ‘한식’이 아닌 앞으로의 ‘한국 음식’을 지향한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메뉴로 전복과 울릉도 칡소를 겹겹이 쌓아 비장탄 숯에 구워 볏짚과 솔잎에 훈연한 요리를 소개했다. 떡갈비나 갈비찜, 전복과 소고기처럼 익숙한 것으로부터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형태를 이끌어낸 것이다.
외국인이 만든 한국 음식 같다는 평도 있지만 결국 그 요리 역시 ‘한국 음식’이듯 손종원 셰프는 맛을 내는 방법이나 기술, 담음새 면에서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한다. 꾸민 것 같지만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음미하고 요리하는 걸 즐기는 그는 접시 위에 자신만의 리듬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그가 빚어내는 이노베이티브 퀴진은 여느 셰프와는 또 다른 영역이다.

셰프가 구상하는 메뉴를 그려서 시뮬레이션해본다. 사무실 한편에는 그림이 그려진 메모가 빼곡하다.

디시에 넣는 싱싱한 허브를 화분째 들여와 사용한다.
셰프에게 영감의 원천을 묻다
인류 역사에서 손꼽히는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다양한 영역에서 창조적인 걸작품을 빚어낼 수 있었던 건 자연 앞에서 겸허한 자세로 배울 때 진정한 창조가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계절이 순환하며 빚어낸 자연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곤 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 아티스트, 자연의 숭고함을 칭송하는 시인과 문학가가 수없이 존재해왔듯 말이다. 자연의 영향력은 셰프에게도 발휘된다. 푸른 기운을 다해 길러낸 자연의 산물은 셰프의 감성을 움직이게 한다. 손종원 셰프도 그렇다. 늘 팀원들과 농부시장 마르쉐를 찾아다니고 제철 식재료를 강조한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손종원 셰프는 주 7일 일한다. 매일 이타닉 가든으로 출근하고, 이타닉 가든이 쉬는 날에는 라망시크레로 출근한다.
“마르쉐에서 식재료를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도 보고 향을 맡는 것보다 더 영감을 주는 건 없어요.” 최근 셰프는 레스케이프 호텔 옥상에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레스케이프 호텔 객실에서 나오는 커피 찌꺼기를 모아 캡슐 커피 브랜드 네스프레소에 보내 거름으로 돌려받으면 텃밭에 비료로 사용한다. “텃밭에서 재배한 작물을 모든 디시에 올리진 못하지만 매일 작물에 물을 주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돌보며 요리에 사용하는 마음이 손님들에게 전해진다면 작지만 멋진 일이 되지 않을까요.” 자연의 산물은 다양한 색감과 형태로 접시를 아름답게 수놓고, 고유의 맛과 식감으로 미각을 기분 좋게 자극한다.

콩soy bean 셰프가 사찰 음식점 ‘두수고방’에서 먹었던 순두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요리다. 따뜻한 두부 커드와 차가운 캐비아의 온도 차이가 미묘하게 잘 어울린다. 캐비아를 갈아 달걀과 섞어 무늬를 더하고, 발효한 표고버섯으로 만든 글레이즈로 마무리했다.

이타닉 가든에서는 통창 너머로 탁 트인 시티뷰를 한껏 감상할 수 있다.

주방과 가장 가까운 카운터 테이블에 손종원 셰프가 직접 나가 메뉴에 담긴 스토리를 들려주기도 한다. 이야기를 알고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진다.
셰프는 맛있게 만드는 것과 담음새도 중요하지만 이타닉 가든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곳곳에 녹여내려고 애쓴다. 코스별로 대표 식재료를 식물도감처럼 일러스트로 그려낸 카드를 식사와 함께 제공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김상인·김희종 작가와 함께 디자인해 만든 식기와 공간을 채우는 아티스트의 음악에 셰프의 취향을 고스란히 담는 것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음악을 즐겨 듣고 전시회에 다니는 것도 아티스트들이 어떤 상황에서 작품을 창조해내는지 들여다볼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다. 다이닝에서 미식을 경험한다는 건 단지 맛을 느끼는 것 이상으로 셰프의 취향을 향유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셰프에게 이타닉 가든을 제대로 즐기는 팁이 있는지 물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손종원 셰프는 매일 점심과 저녁 서비스 전 회의 시간을 갖는다.
“시크릿 팁 같은 건데, 주방을 구경하고 싶다고 살짝 귀띔해주면 흔쾌히 보여줘요. 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음식 만드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어요.” 손종원 셰프는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더 좋아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결과를 하나하나 서비스에 불어넣는다. 그의 애정과 열정이 듬뿍 담긴 이타닉 가든을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주키니zucchini 전복과 칡소를 겹겹이 쌓아 비장탄에 구워 솔잎으로 살짝 훈연해 파를 태운 비니그렛을 곁들이고 주키니 호박의 열매, 꽃, 잎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요리해 담아냈다. 상큼한 명이 장아찌와 향이 은은한 주키니, 구수한 칡소와 전복의 맛이 흥미롭다.

가지eggplant 부드럽게 쪄낸 단새우와 보리새우를 넣어 탱글탱글한 식감을 살리고, 가지 껍질을 우려 만든 발효 식초가 입맛을 돋운다. 가든에서 재배한 허브를 듬뿍 얹어 상큼하고 싱그러운 여름의 맛을 더했다.

주전부리 감태gamtae, 감자potato, 복숭아peach로 구성한 요리. 셰프가 좋아하는 반찬을 한입 거리로 만들었다. 쫀득하고 달콤한 주악에 트러플 필링을 채우고 트러플 가니시를 올려냈다. 두부 껍질로 만든 조그만 컵 안에 멸치볶음과 감자샐러드, 백다시마 우엉절임을 얹었다. 전통주에 절인 복숭아를 입에 넣으면 향긋함이 가득 퍼진다.
셰프의 내일
라망시크레에 이어 이타닉 가든까지 레스토랑 두 곳을 운영하는 셰프에게 힘들진 않은지 물었다. “이타닉 가든을 오픈하고는 하루도 쉬지 못했어요. 이타닉 가든이 쉬는 날에는 라망시크레로 출근하거든요. 전보다 몸이 고달프긴 하지만 그만큼 보람은 있어요.” 셰프가 두 주방을 넘나들 수 있는 원동력으로는 꾸준히 다져온 체력을 꼽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 팀워크를 강조했다. 라망시크레에서보다 이타닉 가든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레스토랑 경영이 셰프 한 사람의 능력과 창조성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개함Mother of Pearl Box 프티 푸르를 담은 안유태 작가의 자개함. 보석을 넣어두는 자개함처럼 한국의 멋이 담긴 작고 달콤한 디저트로 채웠다.

루바브rhubarb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내추럴 루바브 팜’의 요시코 농부가 재배하는 싱싱한 루바브를 활용한 요리. 루바브 소르베에 브레이징한 루바브와 농장에서 온 꽃을 듬뿍 얹고 루바브즙과 히비스커스를 부어 냈다. 향긋하고 새콤한 맛은 물론 담음새도 화사한 요리다.
“레스토랑의 발전은 셰프와 팀이 얼마나 잘 어우러지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손님들은 나라는 사람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찾아와요. 이곳에서 우리 팀이 만든 요리를 맛보기 위해서죠.” 셰프에게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지 물었다. “팀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줄 수 있는 좋은 셰프상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해요. 그런 셰프가 되어서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새하얀 조리복 위에 빳빳한 에이프런을 두른 손종원 셰프는 오늘도 주방에 들어선다. 수년 동안 반복되어온 일상이지만 그에게 주방은 어제보다 새로운 것을 꿈꾸게 하는 설렘의 공간이다.

이타닉 가든 Eatanic Garden
이타닉 가든은 영어로는 ‘eat’과 ‘botanic’, ‘garden’을 더한 이름이고, 한글로는 식물원食物園을 뜻한다. 한국 식문화의 역사와 재료, 조리법 등을 연구해 새로운 경험을 제안하는 셰프의 이노베이티브 퀴진을 경험할 수 있다. 단아하고 한국적인 정서에서 느껴지는 우아함 그 자체를 느껴보길 추천한다. — 런치: 19만 원, 디너: 32만 원
—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231
— 오후 12시~오후 10시(월요일 휴무)
— 02-727-7610
Edit 박솔비 | Photograph 박재현(그리드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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