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재의 모수
- gmthp1
- 2022년 6월 2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2년 7월 28일
MOSU

안성재 셰프는 어떤 질문에도 답이 명쾌하다. 간결하고 명료한 사람이 지닌 힘이 있는데, 안성재 셰프와 모수 서울에서도 그 힘이 느껴진다. 샌프란시스코와 서울에 이어 최근 홍콩까지, 영역을 넓히면서도 안성재 셰프는 오히려 모수의 색깔을 지키는 데 더 집중하겠다는 대답과 함께 ‘오리지널리티’를 거듭 강조했다.
단정하고도 세련된 모수 서울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실험이라도 하는 것처럼 셰프가 핀셋을 조용히 움직여 마무리하는 세밀한 요리의 격에 어울리는 공간, 분주하면서도 여유롭게 움직이는 셰프들의 우아한 몸짓 같은 것들. 안성재 셰프의 모수 서울에 들어서면 곧바로 이러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정원을 따라 난 작은 계단을 올라 묵직한 문을 열면 시원하게 트인 모수 서울의 공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창과 층고 모두 높고, 테이블 간격은 넉넉하다. 테이블 위에서도 마찬가지다. 화려하게 치장하려는 욕심보다는 온 신경을 집중해 만든 음식을 정확하게 즐길 수 있도록 내놓겠다는 마음으로 꼭 필요한 테이블 세팅만 갖춘다. 활짝 열린 키친은 1층 공간의 절반을 차지해, 손님은 셰프와 한 공간을 동시에 사용하게 된다. 모수 서울에는 모든 것들이 적절한 자리에, 필요한 만큼만 놓여 있다. 안성재 셰프가 내놓는 음식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즐기며 셰프들의 유려한 리듬을 함께 볼 수 있는 구조이기도 하다.

1층과 2층 곳곳에는 꼭 필요한 만큼의 오브제만 놓여 있는데, 공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모수 서울만의 단정함을 더한다. 공간의 모든 것은 음식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한다. 불필요한 격식과 겉치장은 덜어내고 밀도 높은 음식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방법만 생각하겠다는 것이다. 시원하게 트인 모수 서울의 공간은 힘이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권위적이지도 않다. 안성재 셰프는 좋은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는 편안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식사를 불편하게 만들면서까지 구태의연한 격식을 더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큰 창으로 길게 들어오는 볕처럼 주변에 놓인 것들을 잘 활용하는 쪽이다. 2층의 넉넉한 자리는 여럿이 편하게 식사를 즐기기에도 좋다. 이는 이들의 마음가짐인 동시에, 모수 서울이 세련되게 그려내는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모수 서울에는 모든 것들이 적절한 자리에, 필요한 만큼만 놓여 있다. 안성재 셰프가 내놓는 음식도 마찬가지다.
모수 서울의 근원과 근본
안성재 셰프는 오리지널리티를 가장 중요하게 지키고, 그 오리지널리티를 기반으로 늘 새로운 것을 만든다. 그런 모수 서울을 특정 종류나 영역으로 분류해 정의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이들은 어디에나 포함될 수 있는 동시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음식을 만드는데, 식재료를 대하는 자세 역시 다르지 않다. “익숙한 재료를 안정적인 방법으로 다뤄서 예상되는 맛을 내는 건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우린 파인 다이닝을 만드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면 달라야죠. 도전하는 맛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해요. 손님이 예상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거나 경험하도록 해야 합니다. 모두가 좋아할 순 없는데, 그렇다고 누구나 좋아할 만한 걸 만들고 싶진 않아요.” 새로운 재료도 좋지만 누구나 아는 재료로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맛을 내려고 노력한다.

모수 서울 1층과 2층의 분위기는 다르다. 셰프들의 움직임이 그대로 보이는 1층은 생동감 있는 반면, 볕이 길게 들어오는 2층은 아늑하다.
식재료가 지닌 다양한 각도의 맛과 식감을 구현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메뉴의 변주 역시 테두리를 통째로 바꾸는 개념보다는 각 메뉴의 세세한 결을 다양하게 살리는 쪽이다. 코스가 바뀌는 주기는 정해져 있지 않고, 시그너처 메뉴는 비슷해 보이지만 매번 다르다. 이곳을 자주 찾는 사람만 그 연속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안성재 셰프와 모수 서울은 어떻게 해야 더 멋있게 보일지 고민하지 않는다. 손님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방법이 무엇인지에만 집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의 음식은 모두 다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모수 서울은 그들이 독자적으로 낼 수 있는 맛에 집중한다. 조미 역시 전통 장이나 기존 조미료를 쓰기보다는 모수만 낼 수 있는 맛의 기준부터 잡는 식이다. 실제로 맛의 베이스를 잡는 팀을 별도로 두기도 한다. 먹어본 적 없는 소금, 결이 다른 간장 등 혹여 손님이 먹었을 때 호불호가 나뉜다 하더라도 이들은 모수 서울에 와야만 맛볼 수 있는 ‘모수의 맛’을 다져나간다. 모수 서울이 정의하는 ‘좋은 음식’은 비싼 비용을 지불하기만 하면 어디에서든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수라서 가능한, 모수이기 때문에 낼 수 있는 맛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결국 이런 자세가 모수만의 영역을 만들어낸다.


익숙한 재료에서 새로운 맛을 발견할 수 있도록 모수 서울의 셰프들은 끊임없이 연구한다.

함양파와 캐비아 메뉴를 만들기 위해 직접 불을 피워 함양파를 통으로 굽는다.
경계 없는 맛의 확장
처음부터 요리를 하려던 건 아니었다. 전혀 다른 일을 꿈꾸고 있었지만 안성재 셰프는 본능적인 흥미에 이끌려 요리를 시작했다. “원래 꿈은 자동차 정비사였어요. 정확하게는 포르쉐 정비사인데, 애리조나에 있는 학교도 등록한 상태였어요. 그러다 사촌동생이 추천한 레스토랑에 갔는데, 너무 흥미로운 거죠. 처음 접한 그 일이 정말 멋있고 재미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룸메이트까지 배정되었던 정비사 학교를 바로 취소했죠. 이게 제 성격이거든요. 궁금하고 재미있다 싶으면 일단 하고 봅니다.” 이렇게 안성재 셰프는 더없이 자유롭지만 단단한 고집을 품은 사람이고, 그러한 고집은 자유로움에서 나온다. 철저하고 엄격하지만 틀은 정하지 않는 식의 자유인 것이다. 그가 처음부터 요리를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스스로 흥미에 대한 확신을 갖고 지금에 이르렀다.

모수 서울의 요리는 한식이라고 해야 할까. 한국계 미국인이 만드는 음식이라면 한식이 아닌 걸까. 많은 이들이 모수 서울을 설명하려는 말은 다양한데, 그중에는 ‘컨템퍼러리 아시안 퀴진’ 같은 말도 있다. “우리를 간편하게 수식하기 위해 붙인 대부분의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아시안 퀴진? 저는 미국인이에요. 그러면 아메리칸 퀴진일까요? 그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한국계라는 이유로 코리안 퀴진이라고 해야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아시안’ 요소가 어떤 건지 생각해보게 되는 거죠. 이건 저희가 정하는 게 아니에요. 손님이 직접 느끼고 판단할 부분이거든요. 뭐든 미리 정하고, 고정해두면 딱 그만큼만 생각하고 느끼게 될 거예요.” 누군가에겐 한식, 또 다른 누구에겐 아시안 등 각자 느끼는 대로 먹고 즐기면 된다. 안성재 셰프는 음식의 범위가 좁은 틀에 갇히지 않고 무한히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르를 구분하지 않는 레스토랑은 이미 많다. 모수 서울 역시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버섯의 향을 강조한 한입 메뉴 ‘버섯타르트’, 보리에 백국균을 입혀 발효시킨 후에 물로 만들어 얼린 후 갈아 넣고 전통주 크림과 꿀을 더한 ‘백국균 빙수’, 두릅 안에 봄나물과 금태를 넣고 쌀가루를 튀긴 후 발효한 채소로 만든 즙을 곁들인 ‘바삭한 봄나물’, 화덕에서 말린 가지와 토마토, 절인 멸치와 채소를 사용한 ‘한우 화덕구이’.
모수 서울의 선명한 색깔
모수는 더 넓은 영역을 그리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와 서울에 이어 최근에는 모수 홍콩을 열었다. 한국에서 자리 잡은 모수라는 브랜드를 해외 파인 다이닝 시장에서, 특히 미식의 도시 홍콩에서 제대로 제시하는 일이 모수의 다음 과제가 되었다. 그럼에도 안성재 셰프는 멀리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오늘의 서비스부터 걱정하고, 그다음에는 직원들이 또 다른 일을 할 때 모수가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오종일 수셰프를 비롯해, 안성재 셰프는 모수 서울에서 함께하는 직원들이 서로에게 좋은 동료이자 파트너가 되어준다고 믿는다. “샌프란시스코, 서울, 홍콩, 어디에서든 모수가 오리지널리티를 잃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홍콩이라는 거대한 미식 도시에서 새롭게 도전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에요. 그렇지만 우리 고유의 색깔이 뚜렷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습니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형태 그대로 해외에서 열게 된 경우는 한국에서 모수가 처음입니다. 외식업을 넘어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리딩한다는 생각으로 사명감을 갖고 있어요. 모수의 오리지널리티를 지키는 데 집중할 겁니다.”

Sommelier’s Pairing
더 새로운 페어링 김진범 소믈리에
김진범 소믈리에는 모수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5년의 시간 동안 함께하고 있다. 늘 새로움을 찾는 안성재 셰프와 같이 고민하며 모수의 오리지널리티를 지켜왔다. 음식의 부족한 점을 찾아 와인으로 채우는 것이 페어링의 역할이라면, 김진범 소믈리에는 모수의 음식에 아쉬운 점은 없다고 대답한다. 그만큼 훌륭한 부분을 와인으로 어떻게 더 부각할지 염두에 두고 각 음식과 와인의 개별적인 페어링보다는 코스의 전반적인 흐름에 더 집중한다. 지금 모수 서울에서 맛볼 수 있는 요리 중에서도 페어링이 특히 돋보이는 메뉴와 함께 소개한다.

PAIRING 1
한우 구이 / 피노 누아 품종 레드 와인
육즙이 살아 있는 한우에는 피노 누아 품종으로 만든 레드 와인을 곁들이면 잘 어울린다. 부위에 따라 품종도 달라지지만, 피노 누아는 모든 부위를 잘 아우를 수 있는 품종이기도 하다. 잘 익은 과실 향과 신선한 산미, 게다가 숙성이 특별히 잘된 피노 누아라면 스모크, 버섯 등의 훌륭한 향까지 한우와 잘 어우러지는 조합을 만날 수 있다.
PAIRING 2
생선 구이 마른 고추 / 가르가네가 품종 화이트 와인
구운 생선과 말린 고추 소스에 이탈리아 소아베 지역의 가르가네가 품종 화이트 와인을 페어링하면 좋다. 일반적으로 가볍게 만드는 가르가네가가 아니라 오크 숙성을 통해 유질감과 보디감을 지닌 이 와인은 과실 향과 꽃 향, 스파이시한 허브의 향을 고루 품은 물론 보디감 또한 훌륭해 구운 생선에서 느껴지는 화덕의 향, 촉촉한 질감 등과 좋은 조화를 이룬다.
모수 서울
식재료의 섬세하고 다채로운 표현이 돋보이는 안성재 셰프와 오종일 셰프의 레스토랑. 김진범 소믈리에의 안정적인 페어링이 더해져 세련된 다이닝을 완성한다. — 런치: 14만원 / 와인 페어링: 10만원 추가
— 디너: 27만원 / 와인 페어링: 18만원 추가
—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55가길 45
— 12:00~22:00 / 15:00~18:00 브레이크 타임(일~월 휴무)
— 02-793-5995
Edit 왕민아 | Photograph 황성재 | Cooperate 미쉐린 가이드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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