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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위스키 증류소, 쓰리소사이어티스

UNIQUE ESSENCE

 

한국 최초의 싱글 몰트위스키 증류소에서 한국의 첫 싱글 몰트위스키 제품을 출시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위스키 명장. 시간과 정성의 결정체를 향해 처음과 끝을 아우르는 앤드루 샌드 마스터 디스틸러 & 블렌더에게 증류소와 위스키는 삶 그 자체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마스터 디스틸러이자 마스터 블렌더인 앤드루 샌드는 43년 동안 위스키를 만들어왔다.

 


외연을 넓히는 개성과 깊이


43년 동안 위스키를 만들어온 앤드루 샌드Andrew Shand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마스터 디스틸러이자 마스터 블렌더다. 마스터 디스틸러는 위스키를 증류하는 과정을, 마스터 블렌더는 위스키를 숙성하는 단계를 총괄한다. 마스터 디스틸러가 어떤 재료와 기법으로 최상의 스피릿(증류기에서 나온 위스키 원액)을 증류할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마스터 블렌더는 숙성된 위스키의 맛과 향을 점검해 제품화할 것인지 또는 다른 오크 통의 위스키와 섞어서 더 멋진 제품을 만들 것인지 판단한다. 지금은 그 기준이 많이 달라졌지만, 앤드루는 위스키 제조 현장에서 20년간 경력을 쌓은 끝에 마스터 디스틸러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가 마스터 디스틸러로 일하던 롱몬 증류소에서 태어났다. 8세 때부터 위스키 제조업에 몸담고 있던 가족을 주말마다 도왔고, 16세이던 1980년 시바스 그룹Chivas Brothers Ltd.에 속해 있던 글렌리벳 증류소에서 캐스크를 만드는 쿠퍼로 일하며 발을 디딘 위스키 제조 현장을 43년 동안 지켜왔다. 지금은 한국의 첫 싱글 몰트위스키 증류소 ‘쓰리소사이어티스Three Societies’에서 위스키 설비와 제조를 총괄하고 있다. 마스터 디스틸러이자 마스터 블렌더로 활약하며 스코틀랜드는 물론 미국, 일본 등의 위스키 증류소를 두루 거쳐 한국에 터를 잡은 지 5년이 흘렀다. 시작은 핸드앤몰트를 창립해 국내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던 도정한 대표의 초청이었다. 위스키에 새롭게 도전하기로 결심한 도 대표가 앤드루에게 증류소를 세우겠다며 연락한 것. 앤드루와 도 대표는 2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부지를 선정했고 2020년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녹촌리에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를 설립했다.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는 주로 스코틀랜드에서 온 몰트를 쓴다. 몰트는 겉껍질husk, 알맹이grist, 가루powder 3가지 크기의 비율이 2:7:1 정도가 되도록 분쇄해 당화에 쓴다.

앤드루가 오크 통에서 숙성되고 있는 위스키를 발린치라는 도구로 꺼내고 있다.

“이곳 지하수는 깨끗한 데다 미네랄이나 불순물이 적어 위스키를 만들기에 적합한 연수예요. 위스키 숙성에 적합한 기후 조건 역시 갖췄죠. 증류소가 자리 잡은 지역은 내륙이고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서 연교차가 커요. 여름에는 기온이 30℃ 후반까지 오르고,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20℃ 중·후반까지 낮아지죠. 한국의 사계절 속에서 더 큰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고, 지금까지 이곳 증류소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위스키가 담긴 오크 통은 더워지면 팽창하면서 술을 머금고, 추워지면 스며든 술을 내보내며 숨을 쉰다. 세계적인 싱글 몰트위스키 생산지인 스코틀랜드는 1년 내내 서늘한 반면, 한국의 기후는 사계절이 뚜렷해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크다. 그만큼 오크 통이 수축하고 팽창하는 강도와 속도도 높아진다. 더 많은 양의 위스키가 오크 통을 드나들며 더 높은 숙성도를 이루어내는 것. 앤드루의 설명에 따르면 스코틀랜드보다 한국에서 숙성 속도가 2~3배 빠른 데다 숙성이 빨리 진행되는 지역으로 유명한 대만과 달리 겨울철이 있어 증발해 사라지는 위스키의 양은 적다. 한국 특유의 기후를 통해 독특한 풍미를 얻을 수 있으리라 내다보는 앤드루의 희망은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에서 2021년 출시한 싱글 몰트위스키 ‘기원 호랑이 에디션’은 약 13개월 숙성했지만, 외국 품평회에서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첫 번째 제품으로 출시한 기원 호랑이 에디션은 국제 주류 품평회 IWSC(International Wine & Spirit Competition)에서 동상을, 20개월 숙성 후 두 번째 출시한 ‘기원 유니콘 에디션’은 샌프란시스코 국제 주류 품평회 SFWSC(San Francisco World Spirit Competition)의 싱글 몰트 카테고리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두 가지 제품과 올해 9월 말 출시한 ‘기원 독수리 에디션’은 모두 2020년 7월 7일 증류한 같은 스피릿을 숙성한 것이다. 기원 위스키의 세 가지 에디션을 통해 이곳 증류소가 개성과 깊이를 쌓아나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셈이다.




새로운 시작, 또 다른 변주


기원은 한국의 첫 싱글 몰트위스키다. 100% 보리를 발아해 만든 맥아를 발효·증류·숙성한 위스키를 ‘몰트위스키’라고 부르는데, 그중 한 증류소에서 만드는 경우 ‘싱글 몰트위스키’로 구분한다. 제조한 증류소 고유의 개성이 녹아들어 맛과 향이 탁월한 편이다. 위스키는 몰팅, 당화, 발효, 증류, 숙성 등 복합적인 과정이 조화를 이루는 유기체와도 같다. 음악에 견주면 증류소는 오케스트라, 그들이 연주하는 곡은 위스키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역할을 하는 마스터 디스틸러이자 마스터 블렌더로서 여러 나라의 증류소에서 위스키 제조 과정을 총괄한 앤드루는 각국의 특징부터 알려준다.


분쇄한 맥아와 뜨거운 물을 섞어 맥아 속 당이 물에 녹아든 맥아즙을 만드는 당화조.

효모를 넣은 맥아즙을 발효시키는 발효조. 효모가 맥아즙 속 당을 잡아먹으며 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을 만들어낸다.

“200년 이상의 위스키 역사를 지닌 스코틀랜드에는 140개가 넘는 위스키 증류소가 있습니다. 스카치위스키협회(Scotch Whisky Association, SWA)에서 철저한 위스키 생산 규정을 통해 관리하고 있는데, 그렇기에 변화를 주기 어렵고 제약이 많은 편입니다. 일본 역시 스코틀랜드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고요. 미국의 경우에는 법으로 규정되어 있기는 하나, 버번위스키나 테네시위스키 같은 일부 위스키 카테고리에만 한정되어 있어요. 사용하는 곡물과 생산 방식에 대해 좀 더 개방적이어서 더 다양한 스타일의 위스키가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입니다. 한국의 위스키는 1970년대부터 1991년까지 정부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했던 위스키 사업이 종료된 이후 30년 이상 변화가 없다가 이제 새롭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생산 과정 중 여러 변화를 줄 수 있는 한국의 위스키가 다채로운 모습을 선보일 수 있으리라 내다보는 앤드루는 한국만의 특징을 지닌 위스키를 추구한다. 일본과 대만의 히비키, 야마자키, 카발란처럼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위스키를 탄생시키겠다는 도 대표와 뜻을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닛카 증류소의 스피릿 생산을 담당하는 총책임자를 맡은 적이 있어요. 닛카 증류소 측에서는 제가 오랫동안 일했던 글렌리벳 증류소와 같은 맛과 향을 내는 위스키를 원했어요. 하지만 그 환경을 만들기 위해 투자하는 만큼 가격만 높아질 뿐 개성은 없을 거라고 판단하고 그 나라만의 특징이 담긴 위스키를 만들었죠.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발효조에서 생성된 알코올 워시는 증류기에서 스피릿으로 거듭난다.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는 단식 증류기에서 2회 증류를 한다. 1차 증류를 거치면 로 와인low wine이 되고, 로 와인을 2차 증류하면 스피릿이 된다.

한국만의 개성을 지닌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앤드루는 제조 과정에서 여러 변주를 시도한다. 독특한 풍미를 가져다줄 새로운 종류의 오크 통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 한 번도 숙성에 사용하지 않은 ‘뉴 오크’, 미국산 버번위스키를 담았던 ‘버번 캐스크’, 스페인산 셰리 와인을 담았던 ‘셰리 캐스크’ 같은 기존 오크 통이 큰 비율을 차지하지만 일부에는 럼, 진, 맥주, 메이플 시럽 등을 담았던 캐스크를 들여와 숙성 과정에 사용하고 있다. 국내 술도가들의 복분자주, 약주 등을 담았던 오크 통을 정할 때는 어떤 맛과 향의 술이 담겼는지 테이스팅해보고 결정한다고. 오크 통 속에 들어 있던 술의 풍미가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의 위스키와 잘 어울릴지 고려하기 위해서다. 한편 한국 나무가 자아내는 맛과 향을 살펴보기 위해 신갈나무와 떡갈나무로 캐스크를 만들어 위스키를 숙성하는 실험도 진행 중이다. 싱글 몰트위스키의 주재료인 맥아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주로 스코틀랜드에서 온 맥아를 사용하고 있지만, 조금씩 맥주 양조에 쓰는 맥아, 국산 맥아, 쓰리소사이어티스가 직접 키운 보리로 만든 맥아를 사용한 실험적인 위스키도 만들어가고 있다.


증류한 스피릿은 초류인 ‘헤드head’, 본류인 ‘하트heart’, 후류인 ‘테일tale’을 선별하는 커팅cutting 작업을 거친다.



맛있게 매운 한국의 맛과 향


위스키의 원액인 스피릿의 맛과 향을 좌우하는 증류기의 크기와 모양은 증류소마다 다르다.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의 증류기도 세상에 하나뿐인 형태를 갖췄다. 키세스 초콜릿 모양을 띤 100% 동 소재의 이곳 증류기는 스코틀랜드에서 이름난 증류 장비 회사 포사이스Forsthyths의 장인이 직접 망치를 두드려 만들었다. 증류소를 지은 후에는 높이가 7m에 달하는 증류기를 도저히 넣을 수가 없어서 증류기와 건물의 뼈대를 먼저 설치한 다음 증류소를 마저 지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큰 증류기가 많다 보니 이를 교체하거나 다른 장소로 옮겨 수리해야 할 때는 지붕을 뜯기도 한다.


증류기를 제작하면서 한국 위스키만의 맛과 향을 어떻게 낼 것인가 고심했고, 한국의 상차림을 연상케 하는 위스키를 만들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주식인 밥과 그 곁에 차려낸 반찬이 조화를 이루는 한국의 상차림처럼 감칠맛이 나는 매콤함을 중심으로 주변에서 바닐라, 꽃, 과실, 곡물 등의 맛과 향이 어우러지는 풍미를 지향한 것. 이런 개성을 살리기 위해 위스키 생산 과정에서 조율과 시도를 거듭하고 있는 앤드루 역시 한국의 매운맛에 푹 빠져 있다.


“처음에는 스코틀랜드에서 맛보지 못했던 매운맛이라서 신기했어요. 인도 음식이나 중국 음식의 매운맛은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반면, 고추장같이 발효 과정을 거친 한국의 매운맛은 다채롭고 미묘하거든요. 외국인이라 그 차이를 조금 더 강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쓰리소사이어티스 구성원들의 출신 국가는 셋이다. 기원 위스키의 세 가지 에디션 이름에 이들 국가를 상징하는 호랑이(한국), 유니콘(스코틀랜드), 독수리(미국)를 붙이기도 했다.



사람을 닮은 시간의 작품


앤드루가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에서 만든 한국 최초의 싱글 몰트위스키에 이름 붙인 ‘기원’은 ‘시작’과 ‘바람’을 의미한다. 그 뜻처럼 앤드루도 해외에서 인정받고 한국인들이 자부심을 느낄 만한 한국산 위스키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위스키 증류소에서 태어나고 자라나 오로지 위스키 증류소에서 일해왔어요. 그렇기에 증류소라는 공간은 제 인생의 집이고, 위스키는 저에게 친구이자 가족이고 삶과도 같은 존재예요. 위스키는 사람을 닮았어요. 스피릿이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졌고 숙성되었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맛과 향을 냅니다. 사람도 각자 다른 성품과 외형을 지니고 있어요. 설령 일란성쌍둥이처럼 선천적 조건이 같더라도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인생의 전성기가 저마다 다른 것처럼 위스키의 맛이 완성되는 시기도 상대적으로 달라요. 숙성 환경의 영향을 받으니까요. 그렇기에 조급해하거나 편견을 갖지 않고 잘 보살피며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죠.”


그는 위스키를 만드는 사람은 위스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청자(listener)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위스키의 맛과 향이 정점에 올랐더라도 그 순간보다 빠르거나 늦게 테이스팅을 하면 최상의 상태를 놓칠 수도 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위스키가 수많은 과정과 숙성을 거친 끝에 탄생하는 순간을 포착하는 앤드루에게 위스키는 인생이자 시간이 완성하는 작품이다.


경험 많은 사람이 변화를 예측할 수 있어야 좋은 위스키가 탄생하는 만큼 숙련된 기술과 안목을 지닌 마스터 디스틸러와 마스터 블렌더의 역할은 매우 크다.




Edit 윤혜경 | Photograph 박다빈(그리드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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