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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카페 ‘큔’의 이야기

THE THIRD TASTE

 

앨빈 토플러가 맞았다. <제3의 물결>로 지식정보시대를 예견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또 다른 저서 <부의 미래>에서 새로운 맛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말처럼 세계는 지금 제1의 맛 ‘소금’, 제2의 맛 ‘소스’를 넘어 재료 그 자체의 숙성과 시간이 만드는 제3의 맛 ‘발효’로 옮겨가고 있다.


큔
큔의 김수향·정성은 대표와 카리테 팀.

작년 이맘때였다. 새로운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모두의 일상이 바뀌었다. 음식도 예외는 없었다. 자극적인 음식으로 가득했던 식탁이 새로운 옷을 갈아입고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큰 관심이 집중된 건 발효 음식. 국내외 매체들은 바이러스와 예방, 면역력을 필두로 발효 음식에 대한 예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발효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전했다. 어떤 지역은 보존을 위해, 어떤 지역은 질병과 싸우기 위해, 또 어떤 지역은 단순히 맛만을 위해 발효 음식을 만들었다.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6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발효 음식은 음료 형태였다. 중국 신석기 시대에 과일이나 쌀로 만든 발효 알코올 음료나 유라시아 캅카스(지금의 조지아 지역)에서 마시던 꿀 와인 ‘미드Mead’가 그 예다. 당시 제조법은 발효라기보다 방치에 가까웠다. 인류가 발효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한 건 1800년대 중반부터다.


1856년 프랑스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가 효모를 발효하는 과정을 연구했고, 이를 ‘공기 없는 호흡’이라 정의하며 식품 저장성을 올리는 용도로 사용했다. 발효 음식이 건강에 이롭다고 알려진 건 1910년이 되어서다. 러시아의 세균학자 일리야 메치니코프Ilya Mechnikov가 불가리아인의 장수 비결을 조사하면서, 다른 문화권보다 더 많은 발효유 소비량을 확인했다. 발효유에서 박테리아(균)를 발견했고 박테리아를 활용해 발효 음식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발효 음식이 건강하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2013년 ‘웰빙 푸드 열풍’의 주역으로 발효 음식이 트렌드에 올라선 지는 꽤 됐다. 미쉐린에서 인정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도 된장이나 김치를 사용한 메뉴를 선보이고, 매달 새로운 콤부차가 진열대에 놓인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에게 발효는 옛것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하다. 지금 발효를 생각하면 많은 사람이 청국장, 된장, 낫토를 떠올릴 거다. 꾸덕하게 뭉쳐 있는 모양새와 호불호가 나뉘는 맛, 쿰쿰한 냄새는 또 어떠한가.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선뜻 먹으러 가자고 권할 만한 음식은 아니다. 요즘같이 ‘감성’ 마케팅이 중요한 때 발효 음식의 이미지는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이미지 탈피를 위해 한때 김치나 미소를 예쁘게 포장하고 유행인 ‘척’하던 시절도 있었을 정도.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최근 인스타그램 피드를 장식한 새로운 스타일의 발효 음식이 있다.


‘시트러스 소금’이다. 흔한 소금과 다르다. 제주에서 난 시트러스를 소금과 함께 발효시킨 발효조미료다. 제주에서 나는 영귤, 금귤, 풋귤, 청유자, 노란 유자, 그린 레몬, 노란 레몬, 레드향, 한라봉, 하귤 등 10가지 이상의 시트러스를 껍질째 소금에 발효한 걸로, 시트러스 맛에 따라 소금, 스파이스, 허브, 고추와 같은 부재료를 더해 만든다. 먹어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향긋한 시트러스 향과 짭짤한 소금, 거기에 발효의 감칠맛이 더해져 맛을 끌어올려주고 깊은 풍미를 선사한다고. 어떤 이는 오일과 식초를 더한 드레싱 혹은 마요네즈를 섞어 딥을 만들어 먹고 누군가는 구운 고기를 찍어 먹거나 해산물 또는 회에 곁들여 카르파치오를 만든다. ‘소금’이라 불리는 이 발효조미료는 우리가 알던 발효 음식과 확실히 다르다. 이토록 세련된 발효 음식을 만든 곳이 바로 서울 궁정동에 있다.


몇 년 새 경복궁 서북쪽 궁정동은 흔히 말하는 ‘힙’한 명소가 됐다. 골목 사이로 가보지 못한 카페와 갤러리, 공방이 가득 차 있다. 누군가 가장 서울다운 곳이 어딘지 묻는다면 으레 경복궁 일대라고 말하고 싶다. 경복궁 일대는 큰길 하나만 건너면 빌딩 숲이 펼쳐지는 서울의 중심지 안에서도 주택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조용한 골목의 정취가 매력적인 동네다. 한적한 주택가 사이로 사뿐히 걷는 맛이 살아 있는 동네. 이곳에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전통적이면서도 트렌디한 발효 음식을 다루는 곳이 있다. 발효카페 ‘큔’이 그곳이다.






큔Qyun의 시작


발효카페 큔은 이미 ‘푸디’들 사이에선 ‘핫 플레이스’로 통한다. 큔을 만든 건 농부시장 마르쉐@의 공동 기획자이자 카페 수카라의 김수향 대표다. 김수향 대표는 재일동포 3세지만 1997년부터 한국음식문화 코디네이터이자 기자로 활동하며 한국의 음식 문화와 식재료를 일본에 소개해왔다. 오랫동안 한국의 식문화를 전하는 일을 해왔지만 처음부터 발효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다. 발효의 힘과 재미를 깨달은 건 카페 수카라에서 식물성 재료 중심으로 메뉴를 변화시키는 일에서 시작됐다. 발효에 관심을 가지고 8년 전부터 ‘발효 워크숍’을 기획하는 등 발효와 숙성에 대해 배우고 나누며 깊은 지식과 전문성을 쌓아왔다. 발효를연구하는 공간을 만들고 발효 음식을 만들며 지금의 큔을 완성했다. 그리고 수카라에서부터 오랜 시간 김 대표와 함께 호흡을 맞춰왔던 정성은 매니저까지 큔에 합류했다. “누가 운영하든 발효 음식을 연구하고 소개하는 ‘큔’의 정체성은 퇴색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김수향 대표가 창간한 한국문화잡지 <수카라>가 현재의 식문화 공간인 ‘수카라’로 흐름을 이어받은 것처럼요.” 이처럼 발효카페 큔을 이끄는 정성은 대표의 바람은 ‘큔’이 발효 식문화를 전하는 매체이자 공간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느리지만 가장 빠른 방법


균(미생물)이 활동하고 그 결과물이 유익한 물질이면 발효고 해로운 물질이면 부패다. 큔은 발효 음식을 만든다. 발효 음식은 고루하고 번거로울 수 있지만 발효는 예로부터 음식을 더 다양하게 즐기기 위해 사용돼온 방법이다. “빠르게 생산하고 소비하는 시대에 발효는 시대를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생산물에 집중하고 작은 변화에 귀 기울여보세요. 즐거워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발효는 귀찮지만 재미있고, 번거롭지만 맛있으니까요.” 느리게 변화하는 발효의 맛을 즐긴다는 정성은 대표와 달리 김수향 대표는 발효를 ‘패스트푸드’로 표현했다. 발효 과정을 거친 음식이 오히려 요리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발효는 미생물의 분해 활동이다. 미생물이 재료를 분해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발효를 거치면 이미 감칠맛과 보존성이 올라가 이후의 조리 과정이 짧아지기 때문이다. “발효 음식은 요리를 더 쉽고 빠르게 만들어요. 김치만 있으면 볶음밥을 만들고, 찌개를 끓이고, 국수도 말아 먹을 수 있는 것처럼요. 화학조미료 없이 쉽게 맛을 내는 비법이죠.”


발효카페 큔
큔의 선반에 진열된 발효조미료. 판매하는 모든 제품 옆에는 재료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함께 활용 가능한 레시피가 적혀 있다.


더불어 배우는 맛


발효는 오래전부터 활용돼온 조리법이다. 국가마다, 지역마다 고유의 발효 식품이 존재할 만큼 넓은 카테고리를 자랑한다. 김수향 대표는 여기서 힌트를 얻었다. “저는 시장 마니아예요. 한국에서는 오일장을, 해외에서는 파머스 마켓을 자주 가죠. 시장에서 처음 보는 발효 음식이 있으면 파는 사람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꼭 물어봐요. 그렇게 친해진 할머니의 집에 가서 배우거나 어머니들을 쫓아다니며 발효의 지혜를 얻기도 하고요.” 몇 년 전 태국 북부 아카족 마을의 부녀자들과 함께 생활할 때 배운 나뭇잎에 콩을 발효시킨 음식 역시 김수향 대표에게 발효의 또 다른 세계를 열어주었다. 멕시코 선주민이 알려준 옥수수 발효법이나 멕시코 길거리에서 파는 과일을 발효해 만든 식초, 찻잎과 같이 발효한 대만식 매실절임도 마찬가지다. “발효는 인류가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지혜이자 문화예요.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지혜와 문화를 손에서 손으로 이어온 사람들 모두가 제게는 발효 선생님이죠.”



흙과 미생물로부터


큔의 두 기획자는 발효의 시작점이자 미생물이 자라는 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확히는 제초제나 농약을 치고 영양제를 주입한 땅이 아닌 ‘미생물로 가득 차 스스로 발효한 흙’이다. 식물을 발효하면 껍질에 묻어 있는 미생물까지 먹을 수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거창하지 않다. 그저 미생물의 활동을 도와주는 것. 발효가 잘 이루어지도록 온도와 습도를 맞춰주고 잡균이 들어가지 않도록 올바른 환경을 조성해주면 된다. 요리의 첫걸음을 미생물이 담당하는 셈이다. 땅과 미생물이 천천히 기른 채소를 껍질부터 뿌리까지 아낌없이 먹는 법.


큔이 찾아낸 방법 중 하나는 직접 작물을 기른 ‘농부’였다. 다품종 소량 생산하는 농부에게서 새로운 작물, 지금 가장 맛있는 제철 채소, 오늘 갓 들여온 신선한 재료를 얻는다. 덕분에 큔은 단순한 당근 요리에 마트에서 흔히 보는 주황색의 당근은 물론 어린 당근의 잎과 작은 뿌리, 중간쯤 큰 당근, 잎이 무성한 당근, 거기에 맛과 향이 좋은 당근 꽃까지 다양하게 사용한다. 농부가 직접 보내주는 식재료에서 영감을 받으니 메뉴는 생산물과 작물의 상태, 양에 맞춘다. 귤이 시면 설탕을 넣고 발효해 시럽을 만들거나 간장을 넣고 발효한다. 단 귤은 고추와 소금을 넣고 발효한 ‘감귤코쇼’를 만든다. 얼마 전 정성은 대표가 감귤과 고수 씨앗을 함께 절인 발효 시럽은 놀랍도록 부드럽고 풍부한 맛을 뽐낸다. 발효는 재료와 조화를 이루며 본래의 맛과 향, 질감을 바꾼다. 새로운 맛을 발견할 때 받는 감동은 발효가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재료는 하나지만 많게는 5~6가지 메뉴가 된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게 큔의 시그니처 ‘시트러스 소금’ 라인이다.


발효카페 큔
카리테의 시그니처 시오코우지. 코우지라고 불리는 쌀누룩 균을 소금에 발효시킨 조미료다.


카리테의 코우지


카리테 팀이 만든 쌀누룩 발효조미료도 주목해야 한다. 카리테는 수카라에서 셰프와 매니저로 일했던 케이코와 아이코 두 사람으로 구성된 발효 연구 팀이다. 오사카에서 온 두 사람은 화학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발효조미료를 만든다. 핵심은 쌀누룩이다. 해남 무농약 쌀을 사용해 ‘코우지(麹)’라고 불리는 누룩곰팡이 균을 띄워 만든다. 쌀누룩 효소가 전분을 당(단맛)으로, 단백질을 아미노산(감칠맛)으로 바꾼다.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카리테 미소’를 예로 들면 먼저 쌀누룩을 직접 띄워 만들고 대두를 잘 씻어 하룻밤 정도 물에 담근 뒤 푹 삶는다. 삶은 대두를 으깨 쌀누룩과 소금을 넣고 섞어 통에 담아 8개월 이상 발효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미소는 1년 이상 묵혀 만드는 한국 된장과 다르게 숙성 기간이 짧고 그래서 단맛이 높다는 점이다. 미소는 팔팔 끓는 물에 된장을 풀어 만드는 우리네 된장국과 달리 불을 끄고 풀어야 단맛과 풍미가 제대로 올라온다. 큔의 카리테 미소는 콩보다 더 많은 양의 쌀누룩을 넣어 일반 미소보다도 단맛이 훨씬 높다.


국내에선 생소하지만 일본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시오코우지’도 있다. 시오코우지는 쌀누룩에 소금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발효조미료로, 소금 대신 사용하면 보다 깊은 맛을 낸다. 이처럼 카리테 팀의 발효조미료는 큔 메뉴의 토대가 된다. 큔에서는 이 시오코우지를 사용해 마성의 소스 ‘비건 바냐카우다Bagna Cauda’를 만들어 사용한다. 마늘과 두유, 오일을 끓인 뒤 시오코우지를 더한 바냐카우다는 채소 스틱과 찰떡궁합이다. 시오코우지의 살아있는 효소는 단백질의 분해를 원활하게 도와주는 데도 유용하다. 육류에 시오코우지를 발라 재워두면 육질이 부드러워지고 고기 잡내가 사라진다. 또한 물기를 뺀 두부를 시오코우지에 며칠 동안 담가두면 수분은 줄어들고 담백한 맛은 진해져 다양한 요리에 치즈처럼 사용하기 좋다.


“발효는 수많은 효소 활동으로 맛과 향, 영양소도 풍부할 뿐만 아니라 장내 환경의 개선, 항산화 작용 등 우리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들어주죠.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생명 활동은 효소와 관련돼 있고요. 음식은 행복을 나누는 것과 같아요. 더 많은 사람이 발효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미생물과 친하게 지내려고 합니다.” 카리테 팀의 케이코와 아이코가 발효 음식에 대한 매력과 애정을 전했다. 두 사람이 추천하는 시오코우지 레시피는 발효 양파. 밀폐용기에 송송 썬 양파와 양파의 20% 분량의 시오코우지를 섞은 뒤 상온에 둔다. 하루에 한 번씩 섞어 3일 동안 발효시키면 풍부한 산미와 유산균을 자랑하는 발효 양파가 완성된다. 완성한 발효 양파는 샐러드에 올려 먹거나 수프를 끓일 때 사용한다. 별다른 육수 없이도 영양 만점 맛있는 수프를 만들 수 있다.


발효카페 큔
큔에서 판매하는 발효조미료 ‘우메보시 페스토’를 사용해 간단한 요리를 만드는 김수향 대표.


바야흐로 발효의 물결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로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고 발효 음식에 대한 관심도와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김수향 대표는 이를 일시적인 트렌드로 보기보단 인간의 욕구가 만든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바라본다. “직접 먹거리를 키우던 시대에서 모든 걸 사고파는 자본주의 문명으로 변화한 끝에 다시금 우리의 식생활을 마주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인간에게는 본래 음식의 근원을 알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어요. 지금 ‘트렌드’라 불리는 발효를 둘러싼 흐름은 균, 미생물이 결국 우리 식문화의 근원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동안 잃어버린 방식을 되찾고 사회 시스템의 모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죠.”


발효는 행위가 아닌 과정이다. 발효를 즐기는 이들은 기술과 지혜를 가두지 않고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큔 역시 그렇다. 판매하는 제품마다 어떤 농부에게서 얻은 재료로 만들었는지, 어떤 조리법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상세히 적어두었을 뿐만 아니라 활용할 수 있는 레시피도 기록해놓았다. 메뉴에 대한 이야기도 직원에게 물으면 자세히 들을 수 있다. 큔이 추구하는 발효의 목적은 판매보다 보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성은 대표는 발효에 대한 인기가 꾸준히 오르는 해외와 달리 국내의 반응은 아직 미미하다고 답했다.


발효카페 큔
균으로 발효 숙성된 재료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름다운 색감을 자아낸다.


한국에서 향하는 길


“한국은 생활 곳곳에 발효의 지혜가 녹아 있어요. 우리 식탁 위에 매일 오르는 김치, 된장, 간장처럼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에 따로 드러나지 않는 거죠. 어떻게 보면 축복이기도 하고요.” 정성은 대표의 말처럼 대부분의 한식은 발효에 뿌리를 두고 있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김수향 대표는 전 세계 사람들이 주목하는 발효의 중심에는 동아시아가 있다고 언급했다. 정성은 대표가 발효의 ‘금수저’라 표현할 만큼 동아시아는 사계절이 뚜렷해 기후적으로 발효가 수월하고 식재료도 풍부할 뿐만 아니라 국가마다 가진 발효 고유의 역사도 길다. “중국에서 발견된 발효의 폭과 깊이는 어마어마해요. 일본은 ‘와쇼쿠(和食, 일식)’가 세계문화유산이 되며 근원인 쌀누룩 발효를 중심으로 한 기술을 갖고 있고요. 한반도도 빼놓을 수 없죠. 특히 우리의 김치는 복합유산발효의 맛과 영양, 보존성에 대한 장점으로 세계적인 큰 관심을 얻고 있어요. 세계 어느 나라보다 한국은 발효 왕국이에요. 큔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서 느끼지 못했던 발효의 재미와 맛의 지평을 확대했을 뿐이고요. 우리가 시도한 다양한 발효를 만남으로써 한국 발효의 매력에 다시 주목하길 바라요. 발효가 갖는 고정관념을 넘어 그 가치를 일상으로 되찾고 싶어요.” 김수향 대표는 한국의 발효를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보존해 현재화시키는 작업에 힘을 쏟는다.



새로운 시도 밤큔


발효카페 ‘큔’에서는 한국의 발효를 좀 더 세련된 방법으로 전하기 위해 ‘밤큔’을 운영하고 있다. 작년 팬데믹을 시작으로 디너 파트를 밤큔으로 명명해 운영을 시작했다. 밤에 보는 큔은 햇살이 내리쬐는 낮과는 또 다르다. 워크인으로 이용할 수 있는 ‘낮큔’과 달리 밤큔은 예약제로 구성해 보다 개인적이고 아늑한 공간에서 발효 식음료를 즐길 수 있다. 지난 11월부터 밤큔에서는 외부 셰프와 협업해 독창적인 발효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기존의 큔의 발효 식품을 사용해 만든 메뉴를 뛰어넘어 색다른 관점으로 바라본 새로운 발효를 표현하고자 마련한 프로젝트다.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고 완성한 음식과 그 맛을 만드는 과정, 그리고 발효에 대한 상상력을 보여줄 수 있으니 큔에게도, 초청 셰프에게도, 음식을 맛보는 사람에게도 즐거운 변화가 생길 터. 매달 다른 셰프의 새로운 요리는 또 하나의 발효 세계를 선사한다.



가치 있는 한 끼를 위해


정성은 대표에게 음식의 의미를 묻자 ‘살아가는 것’이라 답했다. “한국은 유독 먹는 행위와 관련된 어휘 표현이 많습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만남의 약속을 할 때 식사의 여부로 대신하는 말이 많죠. 그만큼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예요. 그러니 음식은 곧 살아가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닐까요?” 같은 질문에 김수향 대표는 “의학에서 장은 ‘제1의 뇌’라고 이야기할 만큼 중요합니다. 장 속엔 약 1~2kg에 가까운 미생물이 살아 있어요. 제게 음식이란 몸의 균에게 먹이를 주는 일이에요. 기왕이면 좋은 먹이를 주고 싶죠”라고 말했다.


김수향 대표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몸은 필요한 걸 맛있다고 느끼는 존재다. 먹었을 때 속이 편안하거나 혀가 맛있다고 느끼는 게 필요에 의한 반응이다. 그래서인지 큔은 재방문율이 유난히 높다. 큔의 음식을 맛본 사람은 안다. 발효가 주는 깊은 맛을 몸이 저절로 기억해 다시 찾게 된다는 걸 말이다. 정성은 대표는 큔으로 또 발걸음하게 만든 주체는 다녀간 사람들의 장 속 미생물이라고 표현했다. 큔이 단지 끼니를 때우거나 배부름이 주는 만족감을 느끼기 위한 곳과는 다르다고도 덧붙였다. 큔은 먹으러 가는 곳이라기보다 새로운 식문화를 경험하러 가는 곳이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천에 재료가 풍부하고 누구나 미식을 누릴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음식은 살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지만 즐거움을 얻기 위한 충분 조건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먹는다는 행위는 개인의 감성과 집단의 문화에 하나의 소재가 된다. 맛있게 먹기 위한 방법도 차고 넘친다. 배를 채우기 위한 식사는 모든 동물이 하지만 먹는 행위로 문화를 즐기는 건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모든 게 빨리 흘러가는 시대에도 오랜 시간을 거쳐 인류의 자산으로 남겨질 발효. 큔이 고수하는 방식을 따르다 보면, 발효는 트렌드를 넘어 미래의 보물로 자리할 게 분명하다.




Edit 이유나, 김지현 | Photograph 류현준, 박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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